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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서자료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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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기타 이야기</title>
			<description><![CDATA[<p><strong><font size="3">기타의 매력</font></strong></p>
<p> </p>
<p> </p>
<p>  기타(Guitar)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지닌 악기이다. 기타는 그 속에 불꽃같은 정념(情念)을 갈무리하고 있는 카르멘(Carmen)과 같은 여인이며, 그 음색이 너무도 관능적이고도 매혹적이어서 카르멘과 사랑에 빠진 이후 주체할 수 없는 숙명의 굴레에서 허우적대던 돈 호세(Don Jose)처럼, 나로 하여금 10살 때 첫사랑을 시작한 이래 아직도 사랑에 목말라 애태우게 만드는 악기이다. 기타는 그 모양새부터가 여체를 닮아있다. 울림통의 가운데는 잘룩하게 들어가서 여인의 허리를 연상케 하며, 그 아래로 이어지는 부드럽고 풍만한 곡선은 영락없이 성숙한 여체를 연상케 한다.<br><br>  잘룩한 허리를 무릎 위에 누이고 풍만한 하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무척이나 관능적이다. 마치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처럼... 기다랗게 목을 빼고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던 여인이 그대로 굳어져 기타로 환생한 것은 아닐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전형적인 기타의 반주형식을 모방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타는 사랑을 노래하는 가장 적합한 악기이기 때문이다.</p>
<p> </p>
<p><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songsarthall.com/files/2023/10/11/54a6147554c11d2dd6f14c8f6d89118b220750.jpg" width="550" align="top" class="photo hand" onclick="imgOrignWin(this.src);" alt=""></div><br><br clear="all">(비우엘라(Vihuela)의 아름다운 모습. 16~7세기에 스페인에서 크게 유행하였다.)</p>
<p><br><br>  쇼팽의 "기타만큼 아름다운 음색을 내는 악기는 없다. 아마도 기타 2중주를 제외한다면..."이라는 말처럼 기타는 혼자서 연주해도 아름답지만 둘이서 연주하는 이중주의 매력은 각별하다. 같은 악기 2개가 어울려 기타보다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하는 악기를 나는 알지 못한다. 2대의 바이올린이 그런가? 아니면 2대의 피아노가? 기타는 때론 격렬하게, 때론 달콤하게, 때론 촉촉하게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준다.<br><br>  기타는 선율악기이기도 하지만 화성적인 악기이며 리듬악기이기도 하다. 라스게아도(Rasgueado) - 손가락 전체를 사용해서 격렬하게 리듬을 표현하는 기타의 연주법 - 로 연주하는 기타의 섬세한 리듬감은 그 어떤 악기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기타는 그 자체로 완벽한 악기라서 그런지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참여하지도 않고 홀로 고고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래서 악성 베토벤은 기타를 일러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하지 않았던가!<br><br>  기타는 바로크 음악에 잘 어울리는 악기이지만 고전파, 낭만파 음악에도 무척 잘 어울린다. 그리고 기타는 현대음악에서 기막힌 매력을 발산한다. 영국의 현대작곡가 왈톤(W. Walton:1902~1983)이 작곡한 《Five Bagatelles 5개의 잡동사니》를 들어 보면 기타가 얼마나 현대적인 정서에 잘 어울리는가를 알 수 있다. 자! 이제 스페인 기타음악의 원류를 찾아서 머나 먼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기타가 스페인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스페인 사람들의 심성을 대변해주는 악기로 정착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은 이러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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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strong><font size="3">대음악가 지르얍이 스페인에 남긴 유산</font></strong></p>
<p><strong><font size="3"></font></strong> </p>
<p><br>  서기 632년,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Mahomet:570?~632)가 후계자(칼리프 Caliph)를 지명하지 않은 채 사망하자 정통 칼리프를 자처하며 최초의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 <strong>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661~750)</strong>는 다마스커스에 수도를 두고 한 때 동으로는 중국의 당(唐)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서로는 북아프리카 전역과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아랍 최대의 제국이었다.<br><br>  우마이야 가(家)와 인척관계인 압바스 가(家)는 750년, 우마이야 가(家)의 왕족들을 연회에 초대해서 모조리 죽임으로써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바그다드를 수도로 하는 <strong>압바스 왕조(Abbas dynasty:750~1258)</strong>를 세운다. 80여명의 왕족들이 살육을 당한 이 와중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왕자 <strong>압둘 라흐만 1세(Abd al Rahman I)</strong>는 압바스 가(家)의 추격을 뿌리치고 어머니의 고향인 북아프리카의 세우타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현재의 스페인)의 꼬르도바(Cordoba)에 있던 우마이야 왕조의 직할령을 접수함으로써 <strong>후기 우마이야 왕조(756~1031)</strong>를 연다.<br><br>  압둘 라흐만 1세(재위:756~788)는 압바스 왕조에 대한 적개심으로 꼬르도바를 바그다드에 뒤지지 않는 도시로 건설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되며, 압둘 라흐만 2세(재위:822~852) 때에는 "바그다드를 따라잡고, 앞지르라"는 정책에 따라 스페인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문화정책에도 힘을 기울여 바그다드로부터 쫓겨난 대음악가 <strong><font color="#ff0099">지르얍(Ziryab, 본명은 아블 하산, Abul-Hasan 789~857)</font></strong>을 꼬르도바로 초빙한다.</p>
<p> </p>
<p><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6" hspace="0" src="http://pds30.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6&amp;regdt=&amp;disk=35&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jpg" width="359"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br clear="all">(대음악가 지르얍. 지르얍은 "검은 새(Blackbird)"라는 뜻이다.)</p>
<p> </p>
<p> </p>
<p><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7" hspace="0" src="http://pds7.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7&amp;regdt=&amp;disk=26&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jpg" width="700"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br clear="all">(지르얍의 이동경로. 지르얍은 바그다드에서 쫓겨난 이후 각 지역을 전전했는데 가는 곳마다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p>
<p> </p>
<p><br>  지르얍은 바그다드의 궁정음악가 이스하크(Ishaq al-Mawsili)의 제자였는데 약관의 나이에 4현 <strong>우드(Al-Ud)</strong> - 탄현(彈絃)악기의 일종으로 류트의 선조가 된다 - 를 5현으로 개조하여 연주한 천재였으며, 나무 조각으로 줄을 퉁기던 것을 독수리의 발톱을 사용함으로써 연주법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승을 능가하는 넘치는 재능 때문에 결국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 꼬르도바에 온 지르얍은 스페인 각지에 유럽 최초의 음악학교를 세워서 음악가들을 양성하는 한편 스페인 전역에 남아있는 민요를 정리하였다.<br><br>  지르얍이 스페인 음악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여 스페인에는 유능한 음악가들로 넘쳤으며 스페인 사람들의 뛰어난 음악성은 이 때에 토대가 만들어졌다. 압둘 라흐만 3세(재위 929~961)때의 스페인은 유럽 최고의 문화국가였다. 당시의 꼬르도바는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700개, 병원이 50개, 학교가 17개, 공중 목욕탕이 900개에 달하는 인구 80만의 유럽 제일의 거대도시였으며,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었고 밤에는 가로등까지 켜져 있었다고 한다.<br></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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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font size="3">비우엘라(Vihuela)에 대하여</font></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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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기타(Guitar)의 어원은 그리스 시대의 리라(Lyra)와 비슷하게 생긴 <strong><font color="#ff0099">키타라(Kithara)</font></strong>에서 유래된 것인데 이 악기는 목이 없기 때문에 기타의 직접적인 선조는 아니다. 기타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아랍민족이 들여온 `우드`, `네페르`, `반두라` 등과 같은 악기에서 유래되어 스페인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16세기 무렵, 유럽에서는 <strong>류트(Lute)</strong>가 유행했으나 스페인에서는 <strong><font color="#ff0099">비우엘라(Vihuela)</font></strong>가 유행하였다. 비우엘라는 5줄을 가진 탄현악기로서 기타의 직접적인 선조가 되는데 현대기타에서 6번 줄을 뺀 것과 같으며, 공명통이 현대 기타에 비해 작으며 겹줄(course)을 사용하였다.<br><br>  원래 비우엘라는 현악기를 총칭하는 말이었다. 손으로 줄을 퉁기는 <strong><font color="#ff0099">비우엘라 데 마노(Vihuela de mano, 손의 비우엘라)</font></strong>, 활로 줄을 마찰시키는 비우엘라 데 아르꼬(Vihuela de arco, 활의 비우엘라), 새의 날개로 줄을 퉁기는 비우엘라 데 페뇨라(Vihuela de penola, 날개의 비우엘라)가 있었으나 비우엘라라고 하면 그냥 `비우엘라 데 마노`를 지칭하는 것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16~7세기는 비우엘라의 황금기였다. 루이스 밀란, 루이스 데 나르바에스, 알론소 무다라, 가스파르 산스와 같은 비우엘라 주자들이 앞을 다투어 연주곡집을 출판하였는데 음악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며 음악적으로도 높은 예술성을 담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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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strong><font size="3">기타음악의 고전들</font></strong></p>
<p><strong><font size="3"></font></strong> </p>
<p><strong><font size="3"></font></strong> </p>
<p><strong><font size="3"></font></strong> </p>
<p>작곡 : Luys Milan</p>
<p>곡명 : El Maestro 중 Pavana I</p>
<p>연주 : Hopkinson Smith(Vihuela)</p>
<p> </p>
<p><embed src="http://www.flowerpension.biz/music/Milan-Pavana-Smith.mp3" width="440" height="44" type="audio/mpeg" volume="0" autostart="true"></p>
<p> </p>
<p><br><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1" hspace="0" src="http://pds23.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17&amp;regdt=&amp;disk=13&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jpg" width="706"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br clear="all">(루이스 밀란(Luys Milan 1500~1566)의 《거장 El Maestro, 1536》음반 표지)</p>
<p> </p>
<p><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1" hspace="0" src="http://pds17.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14&amp;regdt=&amp;disk=22&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jpg" width="394"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br clear="all"><br>(Luys Milan의 "El Maestro"에 수록된 그림.)</p>
<p> </p>
<p><br>  <strong><font color="#ff0099">루이스 밀란(Luys Milan 1500~1566)</font></strong>의 <strong><font color="#ff0099">《거장 El Maestro》</font></strong>은 1536년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 출판된 비우엘라 곡집으로서 <strong>파바나(Pavana)</strong>, <strong>판타지아(Fantasia)</strong>와 같은 독주곡들은 물론이려니와 비우엘라 반주의 <strong>소네토(Soneto 시에 붙인 노래)</strong>, <strong>비얀시코(Villancico 전원풍의 노래)</strong>, <strong>로만세(Romance 이야기식의 노래)</strong>와 같은 당시의 음악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보물창고이다. 흔히 판타지아(환상곡)라고 하면 자유로운 형식에 의한 연주곡으로 알고 있는데 이 시대의 판타지아는 엄격한 대위법적 기법에 의한 곡으로 자유로운 환상에 의한 곡과는 거리가 있다.<br><br>  루이스 밀란의 파바나는 오늘날에도 즐겨 연주되는 작품인데 이 시대는 아직 플라멩꼬 음악이 생겨나기 이전이라서 `스페인 음악=플라멩꼬 음악`이라는 선입관을 가진 사람들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음악이며, 플라멩꼬적인 잡티(?)를 걷어낸 스페인 전통음악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루이스 밀란의 보물창고를 차례로 뒤지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500년 전의 스페인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br><br>  이 음반에서 노래하는 피게라스의 호소력 있는 노래가 일품인데 그녀는 고음악의 대가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의 부인으로서 특히 고음악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한다. 부부가 한평생 같은 분야에서 함께 공부하며 일을 한다는 것이 무척 부럽게 느껴진다. 프랑스의 레이블인 아스트레(Astree)에서는 비우엘라 주자 홉킨슨 스미스와의 콤비로 스페인의 고음악 부문에 많은 음반을 내고 있는데 모두 음악사적인 가치가 높은 것들이다.</p>
<p> </p>
<p> </p>
<p>작곡 : Luys de Narvaez</p>
<p>곡명 : La Cancion del Emperador(황제의 노래)</p>
<p>연주 : Hopkinson Smith(Vihuela)</p>
<p> </p>
<p><embed src="http://www.flowerpension.biz/music/Narvaez-Diferencias-Emperador-Smith.mp3" width="440" height="44" type="audio/mpeg" volume="0" autostart="false"></p>
<p> </p>
<p><br><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1" hspace="0" src="http://pds25.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18&amp;regdt=&amp;disk=12&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jpg" width="710"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br clear="all">(나르바에스(Luys de Narvaez 1510?~?)의 《돌고래에 헌정된 6개의 작품집 Los seys libros del Delphin de Musica, 1538》의 음반 표지)<br></p>
<p> </p>
<p><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9" hspace="0" src="http://pds19.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9&amp;regdt=&amp;disk=21&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gif" width="680"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Quarta diferencia sobre "Quardame las vacas"의 Tablature, Fac-simile)<br clear="all"></p>
<p> </p>
<p><br>  <strong><font color="#ff0099">나르바에스(Luys de Narvaez 1510?~?)</font></strong>의 <strong><font color="#ff0099">《돌고래에 헌정된 6개의 작품집 Los seys libros del Delphin de Musica》</font></strong>은 1538년 바야돌리드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곡집에 포함된 <strong>디페렝시아스(Diferencias 변주곡 형식)</strong>는 주제와 변주(Theme and Variations)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서 나르바에스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엿볼 수 있으며 음악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들이다. 독주곡인 《황제의 노래》나 《`소를 지켜라`의 주제에 의한 디페렝시아스》를 들어보면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에도 높은 예술성을 간직한 걸작이다.<br><br>  그리고 <strong>로만세(Romance 이야기식의 노래)</strong>인 《무어왕이 거닐며 Paseabase el rey moro》도 유명한데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다. 1492년, 무어인에 의한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왕국이었던 그라나다 왕국이 함락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는 700년에 걸친 전쟁을 종식하고 기독교 세력에 의해 통일을 이루게 된다. 무어 왕 보아부딜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북아프리카로 추방을 당하는데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갈 때 석양에 붉게 물든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 - 알함브라는 `붉은 성`이라는 뜻이다 - 을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며, 이 언덕을 `한탄의 언덕`이라고 부른다. 《무어 왕이 거닐며》의 가사 내용은 이렇다.<br><br>무어 왕이 그라나다 시내를 거닐고 있었다.<br>왕에게 알함브라 궁전이 함락되었다는 편지가 전달되었다.<br>아 슬프도다 나의 알함브라여!<br><br>무어 왕은 편지를 불 속에 던지고 메신저를 죽였다.<br>그리고 사카틴 거리를 지나 알함브라 궁전으로 올라갔다.<br>아 슬프도다 나의 알함브라여!<br><br>알함브라에 도착하자 무어 왕은 즉시<br>무어 식(式)의 은빛 나팔을 불도록 명령했다.<br>아 슬프도다 나의 알함브라여!    </p>
<p> </p>
<p> </p>
<p>작곡 : Alonso Mudarra</p>
<p>곡명 : Fantasia que contrahaza la Harpa en la manera de Ludovico</p>
<p>연주 : Hopkinson Smith(Vihuela)</p>
<p> </p>
<p><embed src="http://www.flowerpension.biz/music/Mudarra-Fantasia-Ludovico-Smith.mp3" width="440" height="44" type="audio/mpeg" volume="0" autostart="false"></p>
<p> </p>
<p><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1" hspace="0" src="http://pds24.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19&amp;regdt=&amp;disk=13&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jpg" width="356"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br clear="all"><font color="#000000">(알론소 무다라(Alonso Mudarra 1510~1570?)</font>의 《비우엘라를 위한 세 권의 곡집 Tres Libros de Musica en Cifras para Vihuela, 1546》 음반 표지)</p>
<p> </p>
<p><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1" hspace="0" src="http://pds23.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12&amp;regdt=&amp;disk=31&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jpg" width="748"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p>
<p> </p>
<p><font color="#000000">(알론소 무다라(Alonso Mudarra 1510~1570?)의 《비우엘라를 위한 세 권의 곡집 Tres Libros de Musica en Cifras para Vihuela》표지)</font></p>
<p> </p>
<p> </p>
<p>  <strong><font color="#ff0099">알론소 무다라(Alonso Mudarra 1510~1570?)</font></strong>의 <strong><font color="#ff0099">《비우엘라를 위한 세 권의 곡집 Tres Libros de Musica en Cifras para Vihuela》</font></strong>은 1546년 세비야에서 출판되었는데 그의 뛰어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곡집이다. 특히 이 곡집에 실린 《루도비코 주법에 의한 환상곡》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당시의 하프주자인 루도비코(Ludovico)의 연주법을 모방한 무척 재미있고 세련된 작품이다.<br><br>  비우엘라의 줄마다 다른 음색과 개방현(손가락으로 줄을 누르지 않고 퉁기는 것)을 적절히 이용하여 여음이 지속되는 하프의 효과를 기막히게 표현하고 있으며, 과감하게 불협화음을 사용한 획기적인 작품으로서 무다라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이다. 16세기에 이처럼 수준 높은 작품을 작곡하였다는 것은 음악사적으로 무척 드문 일이다.<br><br>  이 곡집의 제목을 보면 `<strong>Cifras</strong>`란 말이 나오는데 이는 `숫자` 또는 `암호`라는 의미로 타블래추어(Tablature)를 지칭한다. 타블래추어란 악보를 기보할 때 음의 높낮이를 직접 표기하지 않고 악기의 위치를 표기하던 방법을 말한다. 따라서 이 곡집은 타블래추어 악보로 출판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시의 기타나 류트는 대부분 타브 악보로 출판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타레가의 제자 에밀리오 푸홀은 무다라의 이 곡집을 연구하여 각각에 번호를 붙였다. 같은 타레가의 제자인 료베트가 화려한 연주가로서 명성을 떨쳤다면 푸홀은 연주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학구적인 업적을 남기고 있다.<br><br>  음악은 선율 구조나 화성적인 색채도 중요하지만 연주의 재미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 차례 다녀간 가주히토 야마시타가 기타독주로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했을 때 그 초절적인 기교에 혀들 내두른 적이 있다. 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비록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표현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연주의 재미를 한껏 느껴볼 수 있었다.<br><br>  무다라의 이 작품은 기타리스트가 즐겨 연주하는 곡인데 원래대로 비우엘라로 연주하는 것이 예스런 맛이 느껴져서 더 좋다. 홉킨슨 스미스는 명인기적인 기교를 과시하지 않고 학구적인 스타일의 성실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p>
<p> </p>
<p> </p>
<p>작곡 : G. Sanz</p>
<p>곡명 : Pavana</p>
<p>연주 : Ernesto Bitetti(Guitar)</p>
<p> </p>
<p><embed src="http://www.flowerpension.biz/music/Sanz-Pavana.mp3" width="440" height="44" type="audio/mpeg" volume="0" autostart="false">         </p>
<p> </p>
<p><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1" hspace="0" src="http://pds12.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13&amp;regdt=&amp;disk=1&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jpg" width="433"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br clear="all">(산스(G. Sanz 1640~1710)의 《스페인 기타음악의 교정 Instruccion de Musica sobre la Guitarra Espanola, 1674~5》의 음반 표지)</p>
<p> </p>
<p><a target="_blank" href=""><img id="upload_image1" hspace="0" src="http://pds22.cafe.daum.net/download.php?grpid=vMZb&amp;fldid=2rak&amp;dataid=29&amp;fileid=11&amp;regdt=&amp;disk=28&amp;grpcode=lolaflamenco&amp;dncnt=N&amp;.gif" width="552" "controlImage(this.id);" align="absMiddle" vspace="3" border="0"></a><br><br clear="all">(Canarios의 Tablature, Fac-simile)</p>
<p> </p>
<p> </p>
<p><!--"<-->  <strong><font color="#ff0099">산스(G. Sanz 1640~1710)</font></strong>의 <strong><font color="#ff0099">《스페인 기타음악의 교정 Instruccion de Musica sobre la Guitarra Espanola》</font></strong>은 1674~75년 사라고사에서 출판되었다. 필자가 대학시절에 나르시소 예페스(N. Yepes 1927~1997)의 연주로 들었던 《스페인 모음곡 Suite Espanola》은 바로 이 작품에서 발췌하여 모음곡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으나 스페인 전통음악에 대한 동경과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br><br>  그리고 16년 전에 내한했던 예페스가 10현 기타로 이 곡을 멋지게 들려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예페스의 연주는 산스의 작품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전체적인 모습은 1년 전에 구입한 `Orphenica Lyra`라는 단체가 연주한 음반을 통해서이다. <br><br>  스페인의 현대 작곡가 <strong>로드리고(J. Rodrigo 1901~1999)</strong>가 이 곡집에서 주제를 가져와 신고전주의적인 수법으로 완성한 작품이 바로 <strong>《귀인을 위한 환상곡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strong>이다.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기타의 독주가 나오는 아름다운 이 작품은 300년 전에 활동했던 산스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귀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널리 알려진 《아란후에스 협주곡》보다 이 작품에 더 애착이 간다. 그건 아마도 예페스가 연주한 모음곡의 영향도 있겠지만 옛 것을 좋아하는 필자의 곰팡이(?) 취향 때문이기도 하다.<br><br>  전술한 밀란, 나르바에스, 무다라의 곡집이 스페인 민중들의 숨결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약간 고답적이고 아카데믹한 경향이 강한데 반하여 산스의 《스페인 기타음악의 교정》은 스페인 민중들의 숨결을 여과없이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이 곡집은 유난히 춤곡을 많이 담고 있는데 춤을 좋아하는 스페인 민중들의 심성을 담고있다. 여럿이 모여 함께 춤을 추며 즐겁게 노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br><br>  그리고 이 음반에서 음악감독을 맡고있는 호세 미겔 모레노(J. M. Moreno)는 스페인 기타음악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하여 `GLOSSA`라는 음반회사를 설립하여 기타음악에 대한 녹음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멋진 사나이다. 그가 피터 필립스(Peter Philips) - 탈리스 스콜라스(The Tallis Scholars)라는 연주단체를 만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음악의 아름다움을 오늘에 전하기 위하여 `Gimell`이라는 음반회사를 만들었으나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필립스사에 흡수되었다가 최근 다시 독립하였음 - 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자신의 뜻을 계속 펴 나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빠질 수 있는 그가 부럽다.<br><br></p><!-- end clix_content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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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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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1 Nov 2008 16:58:2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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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류트치는 여인</title>
			<description><![CDATA[<p>류트치는 여인</p><p>&nbsp;</p><p><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files/2014/03/18/8b510fb250a40106f15413c458c94d55082325.jpg" width="40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files/2014/03/18/acf48b3a403d55e5f1449709f3eb4cab082325.jpg" width="292"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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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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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08 Jun 2007 14:04:42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기타와 바이올린 듀오를 보고서</title>
			<description><![CDATA[ <A name="[문서의 처음]"></A> 
<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독일교수초청</SPAN><SPAN style="FONT-SIZE: 21px; COLOR: #000000; LINE-HEIGHT: 34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 기타와 바이올린 듀오콘서트를 보고서</SPAN> </P>
<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           미하엘 트뢰스터 &amp; 훌로리안 마이어 롯</SPAN> </P>
<P style="FONT-SIZE: 21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34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21px; COLOR: #000000; LINE-HEIGHT: 34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                                                   </SPAN><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송  형  익</SPAN> </P>
<P style="FONT-SIZE: 21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34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 </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1.W.A.Mozart Duo G-Dur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이중주</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원</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곡은 1783년 잘스부르크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해 작곡된 것이나, 트뢰스터가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이중주로 편곡하여 국내 초연곡이다. 알레그로/아다지오/론도의 3악장으로 되어있다. 비올라의 선율적인 파트에 베이스와 화음을 가미시켜 더욱 아름다운 곡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환상적인 앙상블로 더욱 화려한 곡이 되었다.  </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2. Aguado            Le Fandango Varie op.16    환당고     기타독주</SPAN><SPAN style="FONT-SIZE: 26px; COLOR: #000000; LINE-HEIGHT: 43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UP></SUP></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아구아도는 그 시대의 뛰어난 거장으로 어려서부터 유명한 스페인의 기타리스트인 &#47984;히, 가르시아에게 배웠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Garcia는 특히 즉흥적인 환당고 연주에 능통 하여 보케리니의 기타5중주 ‘환당고’ 에서도 그의 연주에서 일부를 모방했었고, 이 곡 역시 스승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환당고적인 특성을 잘 살렸으며, 생동감 있는 연주와 리듬감으로 다양한 변화를 준 연주였었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3. M.Troester                     전주곡 1,2번 연습곡10번     기타독주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SPAN style="FONT-SIZE: 14px;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Prelude No.1</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 은 1997년 학생 마리아를 위해 작곡한 곡으로 그녀의 성격을 3음으로 표현되었다. 중간 부분인 Grandioso에서 다양한 멜로디와 함께 변화한 후 트레몰로로 변화되며 3잇단 음표의 멜로디와 반주로 특별한 리듬의 매력을 발산한다. 거침없는 ami 스케일과 A.Ginastera의 소나타에서의 스트록 테크닉으로 격동적으로 막을 내린 연주였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SPAN style="FONT-SIZE: 14px;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Etude No.10</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 은 특히 후반부에서 전자 기타리스트인 ‘Eddie van halen’이 사용해 유명해진 ‘Tapping &amp; Chopping`주법을 클래식기타에 접목 시키면서 기타특유의 왼손과 오른손이 지판위에서 교차는 주법으로 화려한 음색과 동시에 시각적 효과를 가미한 매우 흥미로운 연주였다.</SPAN> </P>
<P style="FONT-SIZE: 14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3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4px;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4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3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4px;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SPAN style="FONT-SIZE: 14px;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Prelude No.2 </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2도 화음이 어울리면서 음의 세분화를 통해 묘하게 교차되는 울림으로 종소리(캄파넬라 테크닉)를 연상케 하면서 빠른 스피드로 더욱 화려하다. 3도, 4도로 조율되는 요즘기타에 이 특별한 효과를 잘 살려낸 연주로 특히 엇박 엑센트와 함께 서주에서는 아주 작은 모티브와 최고도의 음역까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연주였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HY엽서M`;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HY엽서M`; TEXT-ALIGN: justify">                                         휴 식</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HY엽서M`;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HY엽서M`; TEXT-ALIGN: justify"><BR></SPAN><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1. 송형익 편곡              ‘아리랑 &amp; 어메이징 그레이스’ 주제와 변주곡</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 이 곡은 한국의 민요 ‘아리랑’과 스코트란드 민요이며 성가로 알려진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주제로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해 편곡해 보았다. 두개의 선율이 중간에 서로 뒤바뀌는 것과 두개의 다른 선율이 서로 화성을 이루는 것은 ‘동서양의 화합’을 뜻한다. 두 나라의 민요임에도 같은 음계를 지녔으며, 동양적인 색채감이 강한 이 곡을 그들 나름대로 해석하여 앙상블을 이루며 잘 연주해 주었다.</SPAN> </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1. Alfonso Carlos Miguel                            시리우스로의 귀환</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미구엘은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 이 곡은 우주선을 타고 시리우스 별(큰 게 자리로 지구에서 9광년 떨어져있고 행성 중 가장 밝은 별)을 다녀온다는 상상의 여행이다. 1악장에는 출발 전의 긴장감과 작별의 설레임이 잘 나타나 있으며, 2번째 부분에서는 무중력 상태의 느낌을 서정적으로 묘사되었다. 마지막 부분 에서는 은하계에서 격는 절박하고 위협적인 상황과 감동적인 귀환한다는 스토리가 기타와 바이올린음악을 통해 잘 표현되었으며, 1995년 여름 미국의 Bristol에서 초연되어 호평을 받은바 있다고 한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DIV>
<P style="FONT-SIZE: 2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BACKGROUND-COLOR: #000000; 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26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left"><SUP>2. N.Paganini <SPAN style="HWP-TAB: 1">    </SPAN>   파시에로의 ‘사랑의 아리아’ 주제와 변주곡</SUP></SPAN> </P></DIV>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HY견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HY견명조`; TEXT-ALIGN: justify"> “나는 기타의 화음을 매우 좋아하며, 여행시 벗처럼 함께 다닌다”고 말한 바이올린의 귀재인 그의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사랑의 감정을 무반주 바이올린 곡으로 화려한 테크닉과 함께 표현한 매혹적인 연주였다. </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견고딕`; TEXT-ALIGN: justify"> 3. Fujii 후지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 1956년 일본의 카미소에서 태어난 유명한 작곡가 겸 연주자이며, 현재 오사카 대학의 기타와 작곡, 교육학 교수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독주와 실내악, 앙상블, 오케스트라, 그리고 피아니스트인 부인과 함께 다양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Guildhall school of Music &amp; Drama에서 작곡과를 수료했으며, 수많은 곡들을 유명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 곡은 알레그로/ 안단테/ 스케르쪼/ 비보 4악장으로 되어있으며, 바이올린이 주로 선율을 맡고 있으나 가끔은 기타가 선율을 이끌며 앞판을 두드리는 등의 타악기적인 리듬 등으로 주선하기도 하는 흥미로운 작품과 멋진 연주였었다. 그들이 만나 듀오를 결성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처음 만나 함께 맞추는 순간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한 것처럼 뛰어난 테크닉과 음악성을 겸비한 그들은 서로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앙상블이 될 것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P>]]></description>
			<link>https://songsarthall.com/?r=home&amp;m=bbs&amp;bid=museum_03&amp;uid=2338</link>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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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1 Jul 2006 01:12:43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기타와 시극의 만남 &quot;오르골&quot; 공연에 관해</title>
			<description><![CDATA[<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80567478353eb607d10b917bd994b444082415.jpg" width="465"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7b8c5abaa336148a1adf072641db902a082415.jpg" width="30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0" height="100%">
<tbody>
<tr>
<td>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50" align="center" height="100%">
<tbody>
<tr align="middle">
<td background="../img/BasicImg/left_bg.gif" rowSpan="2" width="25"></td>
<td bgColor="#ffffff" vAlign="top" width="700">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90">
<tbody>
<tr>
<td height="88" width="690"></td></tr>
<tr>
<td height="10"> </td></tr>
<tr>
<td>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90">
<tbody>
<tr vAlign="top">
<td height="40" background="../Img/PlayImg/title1.gif" colSpan="3">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tbody>
<tr>
<td height="5"></td></tr>
<tr>
<td align="right"><a target="_blank" href=""><img border="0" src="http://www.iloveculture.co.kr/Img/PlayImg/title2.gif" width="70" height="20"></a></td></tr></tbody></table></td></tr>
<tr>
<td vAlign="top" rowSpan="2" width="50">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
<tr>
<td height="100" width="3"><img src="http://www.iloveculture.co.kr/Img/PlayImg/title3.gif" width="3" height="100"></td>
<td width="47"></td></tr></tbody></table></td>
<td height="20"></td>
<td vAlign="top" rowSpan="2" width="40">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
<tr>
<td height="100" width="37"> </td>
<td width="3"><img src="http://www.iloveculture.co.kr/Img/PlayImg/title4.gif" width="3" height="100"></td></tr></tbody></table></td></tr>
<tr>
<td vAlign="top">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tbody>
<tr>
<td vAlign="top" width="150" align="middle">
<table class="border1"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
<tr>
<td><a target="_blank" href=""><img border="0" src="http://www.iloveculture.co.kr/Img/PlayImg/PL04110302_1.jpg" width="150" height="200"></a></td></tr></tbody></table></td>
<td vAlign="top" width="50">  </td>
<td vAlign="top" width="400">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
<tr>
<td height="15" vAlign="top" width="40" align="right"><b><font color="#9966cc">제 목</font></b></td>
<td vAlign="top" width="10" align="middle"> </td>
<td width="360">오르골Orgel 詩와 사랑 실은 자전거 </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b><font color="#9966cc">장 르</font></b></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연극</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b><font color="#9966cc">기 간</font></b></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11월04일(목) ~ 12월05일(일)</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b><font color="#9966cc">시 간</font></b></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평일)오후 7시, (주말)오후 4시,7시 (월 쉼)</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
<p><font color="#9966cc"><b>장 소</b></font></p></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a target="_blank" href="http://www.iloveculture.co.kr/Location/Location.asp" target="blank">플레이플러스(열린극장)</a></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b><font color="#9966cc">가 격</font></b></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청소년 10000원, 대학생12,000원, 일반 15,000원 </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b><font color="#9966cc">할 인</font></b></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font color="#ff0000">20%</font></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 </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img src="http://www.iloveculture.co.kr/Img/BasicImg/love_ticket.gif" width="100" height="16"></td></tr>
<tr>
<td height="30" colSpan="3"><font color="#9999cc">****************************세부정보****************************</font></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font color="#9966cc">연 출</font></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안선영, 김민호(극단 청년대표)</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font color="#9966cc">출 연</font></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font color="#9966cc">문 의</font></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02)540-1553,4</td></tr>
<tr>
<td height="15" vAlign="top" align="right"><font color="#9966cc">링 크</font></td>
<td vAlign="top" align="middle"> </td>
<td><a target="_blank" href=""><font color="#6600ff"></font></a></td></tr>
<tr>
<td colSpan="3"> </td></tr></tbody></table></td></tr></tbody></table></td></tr></tbody></table></td></tr>
<tr>
<td height="20"></td></tr>
<tr>
<td bgColor="#9966ff" height="1"></td></tr>
<tr>
<td height="20"></td></tr>
<tr>
<td>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90">
<tbody>
<tr>
<td width="15"></td>
<td vAlign="top" width="530"><b>시인, 시낭송가와 무용가, 그리고 기타리스트가 만들어 가는 드라마!<br>느낌의 가을!! 잔잔한 감동의 詩 ‘퍼포먼스’ 劇  “오르골 (Orgel)!” 과 함께 하십시오!!  </b><br>  <br><br>◈ <b>작품해설</b><br><br>詩 퍼포먼스 극 오르골(Orgel)은 <br>시 낭송가 모임 /소/리/시/사/랑/에서 초연되었던 아이야....!<br>를 문화예술기획”Openingꡓ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보다 극적이고, 감동적인 <br>퍼포먼스 극으로 각색하여 올리는 그 첫 번째 실험극입니다.<br><br>“오르골”은 우리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br>미를 깨닫게 하고, 우리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삶의 애환이나 즐거움 등을 잔잔한 감동으로 승화<br>시켜 결국 <b>산다는 것은 흐르는 것이다라는</b>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br><br>작품 속에는 김춘수님의 ‘꽃’이나, 천상병님의 ‘귀천’ 등 유명 시인들의 시 내용을 발췌하여<br>극 속에 삽입함으로써, ‘시는 다소 어렵고, 난해하여 가까이 하기 쉽지 않다’라는 고정관념을 <br>조금은 불식시킬 수 있고, 청소년들에게 詩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안겨 줄 것 이라 <br>확신 합니다.<br><br>또한 한국 국자랑 예무단의 단장이신 신미경 선생님의 안무나, 기타 연주의 1인자 송형익 선생<br>님의 기타 선율 및 극 속에 녹아있는 시낭송 등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어 관객들의 재미를<br>더할 것입니다.   <br><br>오르골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시’라는 문학적 장르가 보다 알려질 수 있길 바라며, <br>시와, 연극, 노래, 음악, 춤이 모두 어우러진 하나의 퍼포먼스가 새로운 예술의 한 표현 방법으<br>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br> <br><br>◈ <b>기획의도</b><br><br>따뜻한 사랑의 노래, 잊혀지고 뭉개져, 이젠 머릿속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아름다<br>웠던 마음들... 언제나 무대는 그 공간을 치열하고 열정적인 사랑 그리고 증오... 격렬한 몸부림<br>을 통해 세인들의 감성을 잡아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 아주 퇴화된 작은 이야기를 가지고 잔잔<br>한 파문을 기대하며 대학로의 열린 극장에 보따리를 풀었다<br><br>각기 다르지만 같은 공연의 장르들을 서로 어울림 속에 새로운 장르를 창출하고자 연극,시,<br>무용,음악...의 융합 작업을 시도 하였다. 단, 이 공연을 보러 오시는 관객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br>것은 연극인은 연극으로, 시 낭송가는 시 낭송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혼돈 속에서 새로<br>운 창작의 작업은 각기 자기 장르의 관점에서 볼 때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br><br>혹 이 공연이 다소 부족 할 지라도 수많은 노력 속에 새로운 공연 예술을 만드는 과정속의 한 <br>아름다운 시도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br>       <br><br>◈ <b>시놉시스</b><br><br>불신과 절망,애증의 기운이 무대를 에워싼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을 위협<br>한다. 물론 그것은 방심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위기나 고난을 상징<br>한다.마치 인생에서 어떤 시련이나 굴곡을 모르는 인간들을 비웃듯.<br><br>하지만 인생의 그 이면에는 기쁨도 있고, 사랑도 있고 희망도 있다. 극에서는 이 모든 감정들의 <br>결정체를 의미하는 상징물로 오르골이란 도구를 선택했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br>통해 인생엔 굴곡도 있지만 희망과 사랑 또한 공존하고 있고, 누구나 그것을 잡고 싶어 하는 깊<br>은 내면의 심리를 보여주려고 한다. <br><br>남자 꼬마아이가 울고 있던 여자 아이에게 오르골을 전해주려고 하는 순간 또 한번의 시련이 <br>그 순간을 방해하고 결국 손에 쥐었던 오르골은 00강으로 빠져버리면서 컷 아웃. 서막에서는 <br>전반적인 극의 흐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복선으로 깔고 있다.<br><br>다시 막이 오르면서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두 연인. 민우와 희정.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br>보인다.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민우의 첫사랑 수진과 맞닥뜨린 <br>두 사람. 과거의 연인 수진과 현재의 연인 희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민우의 마음은 결국 수진<br>에게로 향하고 그렇게 버림받게 되는 희정.한편 희정을 늘 뒤에서 지켜보던 민우의 고등학교 <br>친구. 사랑이라는 감정조차도 의심하게 돼버린 희정의 심리적 갈등.<br><br>하지만 언제나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우리 인간들. 결국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희정.<br>장면은 어느 순간 안무와 함께 웨딩마치로 바뀌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된 <br>희정.잉태의 신비로움과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해 천을 가르며 등장하는 안무 또한 극의 재미를 <br>고조시킨다. 그렇게 사랑으로 잉태되어진 아이는 엄마의 기쁨이자 행복이며 곧 희망이다.<br><br>그 희망의 결정체인 아이와 산책을 나가게 된 희정은 그곳에서 우연히 또 한번 수진과 마주친<br>다.아무렇지 않게 민우의 안부를 물어보지만, 수진의 아이가 당연히 민우의 아이일거라고 생각<br>하고 한 질문이지만, 민우의 존재감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한 수진의 대답한마디, "민우씨? 잘 <br>지내고 있겠죠.?" 2막이 끝나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모두 등장하는 출연진들이 한마디씩 여운<br>을 남긴다. 산다는 것은 그 모든 것들과 함께 그저 흐른 다는 것이다 <br> <br>절망과 좌절, 불신과 애증 등 수많은 감정들의 노예가 되어 인간은 늘 혼란스러워 하고 있지만 <br>항상 희망과 사랑 신뢰와 믿음 이런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때론 시련들이 우리의 몸과 <br>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지만 언제나 곁에 늘 존재하고 있는 희망을 놓지 말라는, 때때로 닥치는 <br>시련들은 그저 우리 인생과 함께 흐르는 것일 뿐이라는메시지가 극 전반에 강하게 깔려있다.<br>                                                 <br><br>◈ <b>오르골? 에 대하여 ...</b><br><br>오르골(orgel)은 ""길이가 다른 금속판을 음계순으로 달고, 이에 접하여 가시와 같은 바늘이 촘<br>촘히 붙은 원봉을 부착해서 태엽의 힘으로 원통을 돌리면 바늘이 금속판을 튕겨서 소리를 내도<br>록 장치되고 자동적으로 음악이 연주되는 장난감 악기 "입니다.<br><br>오르골은13세기 중세 유럽의 시간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시계탑(자명종)에서 유래되었는데, 중<br>세 시계 상인들이 이 원리를 이용해 멜로디를 연주하는 기계 `카리용`을 만들었고, 네덜란드에<br>서 오르겔(orgel)이란 이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오르골`이라는 이름은 네덜란드의 <br>`오르겔`이 일본식 발음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br><br>최초로 오르골을 만든 사람은 스위스 제네바의 시계장인 A. 파브르 입니다.처음에는 시계나 <br>담배상자, 반지 등에 응용되었는데, 1770년경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 크게 유행되었다고 합니<br>다. 최초의 오르골은 실린더 오르골이라 하는데 이는 음악신호로서의 핀을 원통에 붙혀 이 핀<br>이 강철 빗살을 튕기며 음악을 연주합니다.<br><br>그리고 1820년대경부터는 상자에 넣어 음악을 감상하는 오르골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스위스<br>의 시계 산업에서 오르골 산업이 태어나 스위스의 중요산업의 하나로 성장하게 됩니다. <br><br>1880년대에는 독일에서 디스크 오르골이 발명되는데,소위 원반형이라 불리우는 오르골로 원반<br>의 돌기가 강철 빗살을 튕기는 방식인데 한대의 기계만 있으면 디스크를 교환함으로써 수많은 <br>곡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실린더 오르골의 자리를 단숨에 빼앗게 됩니다. <br><br>하지만 1920년대에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자 오르골 산업은 쇠퇴하기 시작합니다.나아가 제<br>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큰 타격이 되어 오르골산업 자체가 위기에 빠집니다. 그러나 제2차 세<br>계대전이후, 유럽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이 오르골을 좋아하게 됨으로써 오르골 산업은 다시 일<br>어서게 됩니다. <br><br>1950년대에는 일본이 소형 오르골의 대량생산에 착수, 한때는 세계물량의 90%이상을 점유하였<br>고,현재는 일본과 중국,유럽 일부에서 오르골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br><br><b>오르골은 또 다른 호칭으로 자명금(自鳴琴), 자명악(自鳴樂)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b><br><br>◈ <b>문화예술기획 오프닝에 대하여...</b><br>       <br>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돌았거나 신을 거역하<br>는 반역자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그의 지동설은 진리가 되었고그 누구도 <br>그의 지동설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br><br>예술적 토양이 척박한 이 땅에서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힘을 모아 문화예술기<br>획 "OPENING"을 설립하였습니다. 차후 미래에 문화행사 및 공연예술의 선두자가 되기 위한 <br>혁신적인 사고력과 기획 마케팅으로 한차원 좋은 문화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br>              <br>◈ <b>시 퍼포먼스그룹 /소/리/시/사/랑/ 에 대하여...<br><br>since 1997 봄...  /대표 李 春雨 (‘봄비’)  </b><br><br> 현)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건축춘추”대표 )<br>국립서울산업대학교 동대학원 졸업<br>‘시와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 ‘소박한 시소리꾼 마을’<br> /소/리/시/사/랑/을 결성<br>시낭송CD‘소리시 편지’ 출반<br>안성 청류제,백두산 문학회,평택 문학,중국 연변 조선족 녀류시회,지용제,창조 문학회<br>단양군 산오름 해오름, 이천 문협 축제,만파식적제,포석 조명희 문학제.하이디 하우스, 외 활동<br><br><b>시는 곧 편지다<br>그리움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결픽된 마음에 전해 주어야 할 <br>희망의 메시지가 곧 시가 아닐까...</b><br><br>이러한 생각에서 시작한 시사랑 모임  /소/리/시/사/랑...<br>좋은 ‘소리’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 소박한 시낭송인 마을 /소/리/시/사/랑/ 이 정겹고 <br>아름다운 시낭송인 마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br><br>/소/리/시/사/랑 은, 궁극적으로 프로 시낭송가를 지향 합니다.<br>/소/리/시/사/랑 은, 역량 있고 수준 있는 정예 시낭송가들의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br>/소/리/시/사/랑 은, 시낭송대회에서 수상하신 모든분들의 ‘소박한 마을’이 되기를 바랍니다.<br>/소/리/시/사/랑 은, 전문 시낭송가를 꿈꾸는 모든 분들을 위한 길라잡이가 되고자 합니다.<br><br>그리하여 /소/리/시/사/랑 은, 시낭송을 통한 시사랑 운동의 불길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데 <br>하나의 작은 불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br><br>◈ <b>기사 자료 </b><br><br>한 여름밤의 문학콘서트  시와 음악이 있는 ‘한 여름밤의 문학콘서트’가 오는 4일 오후 7시  <br>전북대 건지아트홀에서 열린다.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하고 동서커피문학상 운영위원회가 후원<br>하는 이번 행사는 전주와 부산, 서울을 순회하며 각 지역의 유명 문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br>자리. 한낮 무더위가 누그러지는 늦은 저녁에 찾아가는 문학콘서트는 컴퓨터와 영화, <br>TV가 문화생활의 주류가 된 요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시를 읊조리고 함께 부르며 문학이 <br>우리의 정서를 풍요롭게 했던 시절의 향수를 추억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br><br>첫 출발지인 전주 콘서트는 김계인 시인의 사회로 초청문학강연과 시낭송, 시 퍼포먼스로 <br>이뤄진다. 먼저 평론가 임현영씨가 ‘명작의 조건’을 주제로 문학작품 홍수 속에서 명작이 <br>갖춰야 할 조건에 관해 강의하며, 시인 송 희씨와 행촌수필문학회 회원들의 자작 수필<br>낭송이 이어진다. <br><br>지역문인으로는 이운룡 시인(세계한민족작가연합 부회장)이 참여한다. ‘시와 여성’을 주제로<br>여성의 자아정체감 확립과 시 창작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이날 콘서트의 백미는 수필동호회 <br>에세이포럼 회원이자 작곡가인 김학민씨와 가수 이동원씨가 선보이는 시노래. <br><br>천상병 시인의 ‘귀천’, 장석주 시인의 ‘애인’, 고은 시인의 가을편지 등 낭만적인 문학작품을<br>노래로 선보이며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또 시 퍼포먼스 그룹 소리시사랑이 안무가 있<br>는 시창/“저걸 어쩌나”,  퍼포먼스극/‘아이야’ 중 한 장면을 공연할 예정이다. <br><br>전주에 이어 17일 부산동래문화회관 대강당, 9월 9일 서울 마포문화체육센터 대공연장에서 <br>차례로 열릴 문학콘서트는 선착순 무료입장. 초대권은 동서식품(www.dongsuh.co.kr), 리브로<br>(www.libro.co.kr), 마이클럽(www.miclub.com), 미즈(www.miz.co.kr), 드라마<br>(www.dramaclub.com),현대카드(www.hyundaicard.co.kr) 등 사이트 이벤트 코너에서 <br>신청할 수 있다.<br><br>김미순 기자 zzang@<br><br><br>◈ <b>극단 청년에 대하여...<br><br>예술감독 한우석님에 대하여...</b><br>현) 연세대 정보통신 교육센터 교수<br>80청소년극 “민들레꽃을 보려거든”<br>85그들도 우리처럼<br>90~93뮤지컬 피아노를 옮기자<br>95~2000뮤지컬 “십자가의 길1,2,3”<br>99오 해피데이<br> <br><b>연출 안선영에 대하여....</b><br>‘71년생, 2003 블랙커피 연출, 전)극단 신협, 섬.섬.섬. 연출<br><br><b>안무 신미경/ 이승미에 대하여...</b><br>신미경... <br>중앙대 대학원 졸, <br>전)서울예술단 수석 단원<br>전) 디딤무용단 지도 위원<br>현) 국자랑 예무단 단장<br>중요 무형 문화재 살풀이춤 이수자 (이매방류)<br>88올림픽 개막식 출연, 개인 발표회 신 미경의 춤 3회, 뉴욕 링턴 컨티넨탈 홀 발표회<br>북한 금강산 공연 등 국내외 100여회 출연<br>국자랑 무예극 “ 아! 금강산이여”- 국립극장<br>          <br><b>이승미...</b><br>성균관대학교 공연 예술 대학원 졸<br>퍼포먼스 뫼비우스 연출 및 출연<br>연극 진선미 극단 “갈매기” 안무<br><br><b>기타 리스트 에 대하여...송형익 </b><br>독일 카쎌음대 기타과석사 졸<br>서울신대 종교음악과 작곡전공<br>독일 FM방송사 초청 전 유럽 순회연주회 다수<br>독일 ELEC 사, 대도에서 CD 10여장 <br>독일 Vogt &amp; Fritz 출판사 자작곡 외 편저서 10여권 <br>전 한국기타협회 회장 / 현 한국기타문예원 회장  <br>현 예중, 고 / 음대 출강<br>홈  피 http://guitarac.com<br><br><b>박종화<br><br>출연자들에 대하여...</b><br>윤해옥 시인님 외 전문 프로 시낭송인들과 각 장르의 예술인들이 연극적 요소를 한층 높인 <br>무대를 구성하여 연기자로 출연 하게 된다. 또한 연극인의 보조 출연으로 감칠 맛나는 연극적 <br>요소의 결합으로 시와 무용과 음악의 이해를 돕고 연극적 재미까지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br>무대 공연을 공연하게 된다.<br><br>참고 자료<br><br>‘04년4월17일 <br>KoPAS Members Day “집에서 만나는 예술파티” 참가  詩‘퍼포먼스’劇 공연<br>제목 ; “다랑쉬오름의 비가” ( 원작; 이생진 시인 )<br>‘04년5월21일 <br>청주 여성회관 초청  詩 ‘퍼포먼스’劇 <br>제목 ; “아이야...ㅡ 시와 사랑 실은 자전거”<br>‘04년8월4일,19일, 9월 9일 <br>“한여름밤의 문학 콘서트” 순회공연 참가<br>제목 ; 안무가 있는 시창-“저걸 어쩌나...”<br>테마시낭송극-“사랑과 그리움의 편지”<br><br> <br>◈ <b>공연개요</b><br><br>공   연   명 : 오르골(Orgel)  - 詩와 사랑 실은 자전거 - <br>공 연 기 간 : 2004년 11월4일~ 12월5일 <br>공 연 시 간 : (평일)오후 7시, (주말)오후 4시,7시 (월 쉼)<br>공 연 장 소 : 대학로 열린극장 <br>관   람   료 : 청소년 10000원, 대학생12,000원, 일반 15,000원 (사랑티켓 참가작) <br><br><b>제작진</b><br>    <br>제 작,기 획 : 문화예술기획 Opening <br>예 술 감 독 : 한우석<br>연         출 : 안선영, 김민호(극단 청년대표)<br>조   연   출 : 전은혜, 이관호<br>구         성 : 이혜정<br>안         무 : 신미경, 이승미<br>녹         음 : 한 철 녹음방<br>조         명 : 박 종구 <br>분         장 : 이명화<br>의         상 : 김나미<br>기 타 연 주 : 송형익, 박종화<br>무대미술 및 제작: 정 종연 <br>출         연 : 홍성훈, 윤해옥, 이춘우, 이화선, 이혜정, 지 연, 이관호, 박은희, 장재영, <br>                  김유미    아역/유승민,김나현<br><br><b>기획</b><br>    <br>제 작,기 획 : 문화예술기획 Opening<br>주         관 : 소/리/시/사/랑/, 열린극장, 극단 청년<br>공 연 문 의 : 02.540.1553,4, 018-334-9545<br><br><br></td>
<td width="10"></td>
<td vAlign="top" width="120" align="middle">
<table class="border3" border="0" cellSpacing="5" cellPadding="0" width="115">
<tbody>
<tr>
<td><img src="http://www.iloveculture.co.kr/img/PlayImg/PL04110302_4.jpg"></td></tr></tbody></table></td>
<td width="15"></td></tr></tbody></table></td></tr>
<tr>
<td height="20">  </td></tr></tbody></table></td>
<td background="../img/BasicImg/right_bg.gif" rowSpan="2" width="25"></td></tr>
<tr align="middle">
<td bgColor="#ffffff" vAlign="bottom" width="700">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00">
<tbody>
<tr>
<td bgColor="#dfdfdf" height="20" align="middle"><a target="_blank" href="http://www.iloveculture.co.kr/information/company_pr1.asp"><font color="#333333">회사소개</font></a> | <a target="_blank" href="http://www.iloveculture.co.kr/Entrance/EntranceGuide.asp"><font color="#333333">이용안내</font></a> | <a target="_blank" href="http://www.iloveculture.co.kr/information/company_protection.asp"><font color="#333333">개인정보 보호정책</font></a> | <a target="_blank" href="mailto:byu@byu.co.kr"><font color="#333333">사업제휴 문의</font></a> </td></tr>
<tr>
<td height="31" align="middle"><img src="http://iloveculture.co.kr/Img/BasicImg/copyright.gif" width="700" height="31"></td></tr></tbody></table></td></tr></tbody></table></td></tr></tbody></table>]]></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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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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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11 Jun 2006 06:53:13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한국 기타음악의 역사</title>
			<description><![CDATA[<a name="[문서의 처음]"></a>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26px; text-indent: 0px; font-size: 20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26px; font-size: 20px;">한국 기타음악의 역사</span><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span></p><p>
<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span></p><p><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80a0785f2e498d83bfe28d3868542dbd082445.gif" width="15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p></span>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span><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한국에 서양 음악이 전해진 것은 이미 100년이 넘었으나, 클래식 기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근거 자료의 미흡으로 확실치 않으나, 다른 서양 음악과 함께 기타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을 통해서 전해졌다. </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한국의 클래식기타의 발전사를 되돌아보면 최초의 연주가 있었던 1940년대로 본다.</span> </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당시 일본에서 공부한 정세원, 박철근, 김인걸, 이종석, 박승천, 이표, 황병갑, 이채진, 배영식 강우식 등 많은 기타 주자들은 광복이후 한국 기타음악을 발전시킨 주역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정세원 씨가 1942년 10월 부민관(현재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국내에서는 최초로 기타 독주회를 가졌던 것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span> </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그러나 광복 이후 전쟁과 굶주림의 역경 속에서 기타음악의 대를 잇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많은 음악가들이 기타 계를 떠나 다른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당시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몇몇 기록이 남겨졌는데 1945년 정세원, 김인걸 씨 등에 의한 기타 5중주단 결성, 1950년 `서울 기타애호가협회`창설‘, 및 1959년 `한국기타연주인협회`(현 한국기타협회) 결성이 바로 그것이다. </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타음악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50년대의 원로들과 신진음악가들이 다시금 모였으며, 배영식씨 등에 의해 연주 및 교육의 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1961년에 열린 배영식 기타 독주회는 정세원 독주회 이후 19년만의 기타독주회였으며, 1965년 국내 최초의 외국인으로 독일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인 지그프리트 베렌트의 내한 연주회가 자주 열리면서 당시 열약했던 국내 기타 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장피에르 쥬메 등 몇몇 외국 기타리스트들이 초청 연주회를 열었으며, 그 당시에는 지방에서부터 연주회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감명의 순간들을 맛보았다.</span> </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그 뒤 1969년 `한국클래식기타음악인협회`가 결성됨으로써 70년대 기타음악활성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72년부터 시작된 전국 기타콩쿠르 개최를 비롯하여, 그 동안의 일회성 연주회에서 전국순회연주회와 지속적인 정기 연주회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각 대학의 기타동아리가 연대 “오르페우스” 서울대의 "화현회“ 건국대의 ”뮤즈“ 등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면서 확산되었으며, 당시 김금헌을 회장으로 `한국기타연주가협회`가 만들어졌고, 그 후 한국기타애호가협회, 한국기타연맹, 한국기타 지도자회 등이 생겨났으며, `전국대학생기타연합회` 및 여러 아마추어 기타합주단 등에 의해 기타 음악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기타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그 여파로 ”세고비아, 가야, 오봉, 스즈끼, 세종, 원음, 예일, 성원, 성음, 전음, 유진기타 등 많은 기타제작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span> </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당시 대표적인 연주자로는 박윤관, 정진덕, 허병훈, 제정민, 배학수, 송형익, 이중주로는 조재경, 오세춘씨 사중주단으로는 서울 기타아카데미 등이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합주 분야에서는 70년대부터 최근까지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리여석 기타 합주단`과 `서울아카데미합주단`이 있었다. 그리고 외국연주자들의 잦은 연주회로 점차 시각이 넓어졌으며, 그 여파로 80년대에는 유학의 전성기를 이루게 되면서 스페인 왕립음악원으로 유학한 문풍인, 허병훈, 신인근, 오승국, 이진아, 신경숙, 배성학, 안형수, 박종대, 나영수 등이며, 후라멩코기타로는 호세리(본명: 이훈)의 귀국으로 국내에서 그의 부인(후라멩코 무용가)과 함께 최근에 활동 중으로 기대가 된다. 그들 중 이명근, 김홍천, 주인철, 박헌수, 온광철 등은 귀국하지 않은 채 그 곳에서 활동하든가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도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독일 유학으로는 유민선, 이용수, 송형익, 이성우, 이판식, 한일수, 방효용, 이병우(오스트리아) 등이며, 미국 유학에는 오세곤, 권대순, 이병우 등이며, 외에도 불란서, 이태리 외 여러 나라에서 현재 유학하고 있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은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오늘날 기타연주회 및 기타전공 강사로서 각기 한국기타계의 발전을 위해 많은 활약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span> </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84년부터 많은 국내 연주자들의 유학과 발맞추어 국내 대학의 음대와 예고에 기타전공 과목이 신설되어 정규적인 교육이 시작된 것은 한국기타계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2-30년 앞서가고 있던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정규대학 내 기타전공과목이 적으며, 단지 사설 아카데미에서만 2-4년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84년 피어선 신학 대,(현 평택 대) 85년 서울대를 시점으로 서울시립대, 경원대, 국립 예술종합학교, 목원대, 침례신대, 부산예술대, 국립원주대, 경성대 등 예원학교, 서울예고, 선화예고, 계원예고에까지 기타전공 과목이 앞을 다투어 생겨나고 있으며, 1998년 한해에만도 수원대, 배제 대, 계원예고 등으로 생겨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기존의 연주자들 외에 안형수, 이중기, 김윤배, 신경숙씨 등 젊은 연주자들도 많이 배출되었으며, 베렌트를 시작으로 이예뻬스, 브림, 로메로 일가, 바루에코, 러셀, 루키, 휘스크, 깔레바로, 이즈빈, 트뢰스터, 윌리암스, 야마시타, 신이치 등 세계적인 명 기타리스트들이 초청되면서 국내 기타 계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1942년부터 60여년이란 짧지 않은 역사를 통하여 기타인 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70-80년대의 황금기에 비해 현재 클래식 기타 계는 IMF 등 경제적인 어려움과 편엽적인 교육의 문제점 등으로 잠시 침체기라 할 수 있으나, 앞으로 점차 활발한 클래식 기타연주회 등으로 클래식기타만이 지니고 있는 여러 장점들이 각 학교의 CA, 특별활동의 다양성과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조기 교육의 열풍과 더불어 나이 어린 전공자 및 다양한 취미 생들과 기타애호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오늘날에는 평생 직업이 점차 불확실해지면서, 10년 후의 국내 기타 계는 음악교육의 필요성을 이미 직감하고 있으므로 그 때 쯤에는 분명히 더 많은 기타선생들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 올 것이기에 기타 계의 앞날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우리나라 기타 계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는 연주자들과 합주의 역사를 꾸준히 이어오는 단체들이 있으며, 단지 기타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그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의 기타음악계의 도약을 기대해 봄직하다.</span> </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7px; font-size: 13px; font-weight: bold;">  </span><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14px; font-size: 10px; font-weight: bold;">&lt;이 글 중에는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빠져있을 것으로,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안 되어야할 것이다.&gt;</span> </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21px; font-size: 13px;"><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span style="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21px; font-size: 13px;"><br></span></p>
<p style="margin: 0px; text-align: justify; color: rgb(0, 0, 0);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font-size: 13px;"></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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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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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4 Mar 2006 14:42:5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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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세계 기타리스트 연보</title>
			<description><![CDATA[ <A name="[문서의 처음]"></A>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A name=#44da33b7></A><IMG height=32 src="file:///C:/DOCUME~1/Master/LOCALS~1/Temp/UNI00000c7c0009.gif" width=42 border=0><A name=#44da33b8></A><IMG height=32 src="file:///C:/DOCUME~1/Master/LOCALS~1/Temp/UNI00000c7c000b.gif" width=42 border=0>  </SPAN><SPAN style="FONT-SIZE: 21px; COLOR: #000000; LINE-HEIGHT: 34px; FONT-FAMILY: `양재 샤넬`; TEXT-ALIGN: justify">기타 리스트 연보</SPAN><SPAN style="FONT-SIZE: 26px; COLOR: #000000; LINE-HEIGHT: 43px; FONT-FAMILY: `양재 소슬`; TEXT-ALIGN: justify"> </SPAN><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800                          |       Fernando  Sor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Ferdinando Carulli                      |                       Matteo Carcassi</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825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Dionisio Aguado         |      Mauro  Giuliani      |          Anton Diabelli</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850  Luigi Legnani                           |                       Nicolo Paganini</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Madame Sideney Pratten    +-------------+-------------+   Giulio Regondi</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Don Huerta             |       Julian  Arcas       |         Napoleon Coste</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875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Zani de Ferranti          +-------------+-------------+              Ernest Shand</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William Foden          |     Francisco Tarrega     |          Luigi Mozzani</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00  Vahda Olcott Bickford     +-------------+-------------+      Daniel Fortea</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Miguel Llobet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Emilio Pujol             |                    Maria Luisa Anido</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Andres  Segovia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25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Mario Maccaferri</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Augustin Barrios Mangore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Regino Sainz de la Maza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Luise Walker</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Richard Pick           |        Ida  Presti        |           Vicente Gomez</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40  Abel Carlevaro         |                      Rey de la Torre</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Laurindo Almeida      |       Julian  Bream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Narciso Yepes    +-----------------+--------------Alexandre  Ragoya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50  |    Alirio  Diaz     +-----------------+-------------Manuel Lepoz Ramos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Celedonio Romero       |                     Carlos Barbosa Lima</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Siegfried Behrend  +---+       John Williams       +---+  Konrad Ragosnig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Milan Zelenka            |                  Maria Livia Sao Marcos</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60  Ernesto Bitteti           |          Alberto Ponce / Oscar Ghiglia</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Jose  Morel     +---+        Leo  Brouwer  +---+Christoper  Parkening|</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Alice Artzt / Sergio Abrrreu            |                         Osca Caceres</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70  |    Pepe Romero     +-----------------+-----------------Angel  Romero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Liona Boyd / Eduardo Ferrrnandez      |           Ricardo Fernandez Iznaola</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Sharon Isbin / Jorge Carrrdoso          |             John Mills / Carlos Bonell</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Julian Byzantine                        |                     Leo Witoszynskyj</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80  |    David Russell    +---+       Mauel Barrueco      +---+Vladimir  Mikulka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Eliot Fisk / David Starobin / Roberto Aussell  / Michael Troester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Goran Scholler  / Alvaro Pierri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P>]]></description>
			<link>https://songsarthall.com/?r=home&amp;m=bbs&amp;bid=museum_03&amp;uid=2335</link>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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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1 Mar 2006 15:39:02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세계 유명기타리스트들의 약력</title>
			<description><![CDATA[ <A name="[문서의 처음]"></A>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 클래식기타 연주가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1. 근대 클래식기타의 아버지 타레가(Francisco Tarrega Eixea, Spain, 1852.11.29 -- 1919.12.5)</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기타는 악기사상 가장 오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가진 발현악기이며 비엘라(Vihuela)→류트(Lute)→기타(Guitar)의 과정을 거치면서 개량, 보급되어 16세기경부터 기타음악은 시인 에스피넬(V.Espinel), 의사 아마트(J.C.Amat)에 의하여 발전되었고, 코르베타(F.Corbetta), 산즈(G.Sanz), 드.비제(R.de Visee) 등에 의해 더욱 찬란한 전고전시대를 형성하였으나 바이올린 등 궁현악기의 발달로 말미암아 기타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모레티(Moretti), 아구아도(D.Aguado) 등에 의하여 기타음악이 재현되면서 소르(F.Sor), 쥴리아니(M.Giuliani), 카룰리(F.Carulli), 카르카시(M.Carcassi) 등이 계속 출현하여 기타음악은 제1기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황금기 이후 19세기로 접어들면서 피아노의 발달과 오케스트라의 확대, 바그너에 의한 오페라의 부흥으로 기타음악은 역사상 가장 쇠퇴현상이 일어나면서 기타는 단지 노래와 춤을 위한 반주나 일반 대중들의 오락악기로서 다루어져 왔다. 예컨대 슈베르트는 피아노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는 가곡의 반주로 피아노 대신 기타를 대용으로 쓰곤 했던 것이다. 그후 많은 관심있는 음악가들이 기타의 연주법의 개발에 우선적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타는 대규모 연주홀에 부적합하다는 근본적인 단점을 갖고 있었으며 기타 음악의 작곡도 그 기술적인 화려한 면에 늘 묶여 깊이 있는 곡이 나오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이때 스페인에서는 현대 기타음악의 시조이며, 기타의 로만시대를 장식한 거봉이며,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절찬을 받은 프란체스카 타레가(Francisco Tarrega Eixea)가 1852년 11월29일 스페인의 바렌시아주 카스텔론의 빌라레알에서 한 가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타레가는 8세 때 맹인 기타리스트인 마누엘 곤잘레스(M.Gonzales)에게 최초로 기타지도를 받고 이어 훌린안 아르카스(Fulian Arcas), 토마스 다마스(T.Damas)에게 사사하였다. 타레가는 한 후원인의 도움으로 바렌시아에서 공부를 하였으나 그가 사망한 후에는 브리아나로 가서 기타교수 생활로 가난하게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 브리아나의 재벌을 만나 마드리드 국립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고 1875년에는 콩쿨에서 1등을 획득했으며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 그 후 타레가는 기타리스트로서 마드리드에 데뷰한 후 스페인은 물론 런던, 파리, 스위스 등을 연주여행 했으며,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절찬을 받았다. 그는 기타에 관한 일관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공부한 그가 기타에 전념하게 된 것은 마드리드 음악원에 입학하고 부터였다. 기타의 어떤 모습도 타레가가 이 악기로부터 회의를 품도록 만들지 못했다. 마드리드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타레가는 그곳 알함브라극장에서 기타연주회를 성공적으로 가졌으며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 전국 주요도시의 순회 연주회에서 타레가 특유의 신선하고 독특한 연주를 하여 절찬을 받았다. 1881년에는 파리, 런던 등지에서 연주, 귀국후에는 스페인 전역에 걸쳐 연주여행을 가졌고 결혼하여서는 바르셀로나에 정주하였다. 타레가는 겸손, 온화, 학구적인 성격으로 그는 화려한 스테이지에서 멀리하는 한편 기타 예술의 탐구를 위한 엄격한 수도자의 생활을 하였다. 타레가가 이룬 많은 업적 가운데 일부는 기타로 하여금 그 소리가 더욱 맑게 울려 퍼지도록 한 것과 기타의 울림에 풍부한 색채감을 준 것, 그리하여 복잡한 악곡들도 기타로 연주할 수 있게 한 것 등이다. 이 모든 업적은 기타의 주법 개발과 기타의 디자인 혁신으로 인해 가능했다. 타레가는 음색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타레가가 기타를 위해 손을 댄 작품으로는 기타자체를 위한 오리지널 작품과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베버 그리고 바그너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편곡작품이 있다. 이 위대한 기타음악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대단한 개성과 스페인의 철저한 향토성을 감지하게 된다. 그는 투리나(Turina), 토로바(Torroba), 팔라(Falla), 빌라로보스(VillaLobos)로 이어지는 스페인 음악의 첫주자였다. 단순하고 명상적인 <전주곡>은 Lagrima(눈물)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마주르카의 두 제목은 여자의 이름을 나타내는데 그 특징은 틀림없이 음악에 비추어져 있는 듯 싶다. "13개의 전주곡", "알람브라의 회상", "아라비아 기상곡" 등 작곡, 편곡을 합해 300곡이상의 걸작이 있다. 타레가는 젊었을 때부터 지병인 안질로 계속 번민해 오다가 중풍이 발작하여 1919년까지 고생하던 끝에 그해 12월 5일 바르셀로나에서 서거하였다. 타레가는 생애의 반을 손톱을 사용한 주법으로 연주했으나 자신의 손톱에 결함이 생겨 손톱없이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수개월간 연구끝에 개발하여 그후로는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연주회까지 손톱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타레가의 직계문하인 에밀리오 푸홀(E.Pujol 1886~ 스페인)은 타레가가 손톱없이 연주하게 된 원인은 타레가 자신의 손톱에 결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살이외의 불필요한 물질을 사용하여 탄주하는 것보다 신경과 직결될 수 있는 살을 사용함으로써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현대의 기타리스트중에서 타레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타레가가 존재하지 않았던들 지금의 기타는 진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타레가는 종래의 기타연주나 작곡에서 철저한 개혁을 하였으며 아구아도 주법을 떠나 기타연주 기법의 백지상태에서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한까지 연구, 개척하였다. 왼손의 운지법, 오른손의 탄주법, 또는 음색, 음량의 풍부한 변화와 화음의 확충등, 수많은 업적은 우수한 문하생들에게 계승되어 20세기 기타 르네상스를 낳게 하였다. 금세기 초에 활약하였던 스페인의 저명한 음악가 루이스 미류트는 타레가를 찬양하는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마도 작곡가로서의 타레가는, 페르난도 소르의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타의 진짜 위대한 면을 발견해낸 것은 타레가라고 생각한다." 현재 타레가의 유해는 출생지인 카스텔론에 안장되어 있으며 프라아나에는 타레가 일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상이 세워졌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2. Andres Segovia, Spain, 1893. 2. 28 -- 1987. 6. 3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많은 기타리스트의 이름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1893년 2월 17일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태어나서 1987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기타의 선율을 좋아했고 10세부터 독학으로 기타를 공부하여 기타를 시작한 지 4년만인 14세에 그라나다에서 데뷔하고, 1916년 마드리드의 아테네오 극장에서 정식 데뷔한 이래 1918년 중 남미 순회, 1924년 파리 데뷔 등 구미의 여러나라로 연주여행을 하면서 기타 음악의 보급에 힘썼다. 그는 기타의 약점인 작은 소리를 극복하기 위하여 손톱과 살을 적절히 사용하는 주법을 개발하였고, 후에 많은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의 업적은 연주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많은 현대 작곡자들에게 자극을 주어, 많은 기타곡을 작곡하게 하였으며, 이는 현재 기타 레퍼토리 중에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세고비아 자신도 기타를 위한 작품으로 "5 Anecdotes", "Estudio sinLuz" 등의 작품을 클래식 기타의 레퍼토리로 확장시켜 기타의 연주회용 독주 악기로서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세고비아는 원곡을 살리면서 기타의 분위기와 이에 맞도록 재구성하는데 능했다. 그 중 바하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D장조 중 샤콘느의 편곡은 백미로 꼽히는데, 세고비아 자신도 자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에 하나가 샤콘느를 편곡하여 초연하였을 때라고 회고한 바 있다. 20세기 기타리스트 중에 세고비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고비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는 현재 유명한 연주자들이 거의 세고비아에게 배운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해 준다. 세고비아의 연주는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개성이 강하고 낭만적이며 소리는 대체적으로 무겁다. 그의 음색은 보통 굵고 풍부하여, 잦은 비브라토의 사용으로 소리에 윤기를 띠기도 한다. 또한 그는 알아이레 주법을 사용할때는 살끝으로 줄과의 잡음을 최소화하며, 아포안도에서는 살과 손톱을 동시에 탄현에 이용하여 부드러운 소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레코드는 1952년부터 1972년까지의 SP녹음이 일본 MCA와 미국 MCA에 의하여 CD 16개분의 전집으로 나와 있는데, 이 중 1957년까지의 연주는 Mono로 연주된 것이다. 이외에도 몇장의 음반이 EMI레이블로 소개되었다. 모두 그의 섬세하면서도 낭만적인 소리의 깊은 호소력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준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1.세고비아의 제자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세고비아에게 귀중한 레슨을 받은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결코 적지 않다. 물론 마스터 클래스에서 몇 번 레슨을 받은 것으로 제자라는 호칭을 써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기타란 악기가 어느 일정기간 동안 한 스승에게서 배우지 않으면 아무래도 그 스승의 테크닉을 몸에 완전히 익히기 어려운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고비아의 제자라 할만한 인물은 다수이다. 유명한 인물들로는 존 윌리암스, 알리리오 디아즈, 오스카 길리아, 호세 토마스, 호세루이스 곤잘레스, 크리스토프 파크닝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세고비아의 기술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배워온 재능 있는 연주가들임에 틀림없다. 세고비아는 마스터 클래스의 경우에도 우수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구별하여 특별히 출중한 생도 이외에는 그 레슨을 모두 조교역인 디아즈나 토마스에게 돌려버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디아즈 자신도 술회한 바 있으며 레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곧 세고비아 자신이 지명한 우수한 생도가, 실은 세고비아의 레슨을 받기 전에 이미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던 인물이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디아즈, 토마스, 호세 루이스의 예를 들면, 그들은 다년간 세고비아의 문하에서 지도를 받아왔으나, 그것은 그들이 그전에 사사받은 바 있는 사인즈 데 라마자의 지도 기간에 비해 10분의 1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놀라운 일인지 모르지만 이것은 다른 제자 기타리스트의 경우에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세고비아의 "진짜" 제자는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반면, 전술한 이들 제자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 제자들은 모두 다른 관점에서 세고비아를 술회하고 있다. 먼저, 세고비아를 존경하고 자신이 제자였음을 정말 기쁘게 생각하며 찬미하는 사람들로는 호세 토마스와 마쓰다 아끼노부가 해당될 것이다. 다음으로, 디아즈나 호세루이스의 경우인데, 이들 또한 세고비아의 업적을 찬양하는 동시에 은사로서의 세고비아는 그들의 또 한사람의 스승이었던 사인즈 데 라마자와 거의 동격의 평가를 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리고 끝으로, 존 윌리암스와 파크닝의 경우인데, 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추구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인물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항상 그들의 생각 속에는 세고비아의 풍조에 대한 "주저함"이 있었음을 의미한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2.세고비아의 연주 스타일</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그러면, 약2회 정도 세고비아의 어드바이스를 받은 줄리안 브림과 예페스의 경우는 어떠한가. 브림은 세고비아를 존경한 인물이었으나, 세고비아의 연주 스타일을 따르는데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한편 예페스는, 오히려 세고비아를 관찰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길을 추구하여 성공을 거둔 예이다. 예페스의 연주, 특히 젊은 시절의 연주는 다분히 의식적으로 세고비아와 정반대의 음악 표현을 하고 있음을 보더라도 그런 점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잘 알려진 연주가들인 마뉴엘 바루에꼬와 데이빗 럿쎌의 면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거의 완전히 세고비아 주법을 부정하면서 출발하고 있다. 바루에코는 자신이 언명한 바가 있으며, 럿셀은 그 연주 스타일에서 안티-세고비아임을 증명하고있다. 그들은 브림이나 예페스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반세고비아의 기치를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그러한 경향은 점차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연주 스타일면에서.) 그렇다면 세고비아는 정말 낡은 스타일의 인물인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그의 연주를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 혹은 그가 남긴 방대한 레코딩을 접한 많은 수의 사람들은, 역시 세고비아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역시 세고비아는 "기타리스트" 이상의 "대예술가"라고 칭호를 받아야 옳지 않을까 싶다. 세고비아의 연주에 불만을 갖고 있는 젊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의 리듬과 독특한 세고비아류의 노래를 혐오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가 연주하는 곡은 악보를 보며 음부를 쫓아가며 듣는 그런 류의 연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그의 연주는 그만이 해낼 수 있는 대예술가의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고비아가 싫은 이유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의 연주의 훌륭함에 초점을 맞추어 보지 않으면, 결코 세고비아의 위대함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곡-사실상 하나의 장르를 이룰 만큼 많다-은 비교할 대상이 없을 만큼 훌륭한 연주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금세기 초에 활약하였던 스페인의 저명한 음악가 루이스 미류트는 타레가를 찬양하는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마도 작곡가로서의 타레가는, 페르난도 소르의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타의 진짜 위대한 면을 발견해낸 것은 타레가라고 생각한다." 타레가의 예를 들어 세고비아를 말함은 무리가 있겠으나, 이 문장 속에 나타나는 "기타의 위대한 면"을 실현한 것이 세고비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타라는 악기가 고유의 노래하는 기타의 음을 내지 않을 때, 그럼에도 기타라고 할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기타계에는 "향이 없는 커피"와 같은 상황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고비아는 그 자신이 기타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였다. 초월적인 테크닉, 독특하고 매력적인 톤, 이것들은 그의 신체의 거대함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손의 거대함과 관계가 있다. 그의 양손은 마치 글러브와 같아서 오른손의 지두는 충분한 압현이 가능했다. 그 결과는 매우 달콤한 음색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특히 그의 왼손은 실로 은혜로운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타를 지판상에서 압현할 때, 플렛 가까이에서 압현함은 상식이며, 어느 교본에나 언급되고 믿는 내용이다. 이것은 사실상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항이나, 세고비아의 경우는 그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사실상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매우 굵었으므로, 플렛중에 손가락을 대어도 플렛 가까이에 지두가 놓이는 효과를 내었기 때문이다. 또한 플렛 위에 손가락이 놓여도, 결코 찍찍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지두가 굵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전성 시대에, 연주회에서 찍찍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았던 사람은 세고비아 뿐이었다. 이런 점이 바로 세고비아의 신체상의 장점이었다. 크라이슬러는 "세계에는 참으로 위대한 현악주자가 두명있는데...이들은 카잘스와 세고비아이다." 라고 말했다. 세고비아가 한말중에 가장 인상깊은 것은 `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보다 감동을 주는것이 더 좋다.`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금세기 또 한사람의 유명 음악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기타 소리는 작지만 멀리까지 울린다고 했던 스트라빈스키의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세고비아 본인에게 꼭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어떤 악기 하나에서 어떤 연주가 한 사람이 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낸 것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3. Narciso Yepes, Spain, 1927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세고비아의 타계 이후 최고의 연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연주자 나르시소 예페스, 그는 1927년 남부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4살에 기타를 가지게 된 예페스는 기타과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는 여기에서 발터 기제킹(Walter Gieseking) 과 게오르그 에네스코(Georges Enesco)에게 리듬과 다양한 음색을 배우고 작곡과의 Asendo 교수를 만나 훗날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서 기초를 닦게 된다. Asencio 교수는 기타가 피아노와 같이 스케일이 균형과 속도감을 가질 수 없다면 기타라는 악기가 불완전한 악기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예페스에게 인식시켰다고 하는데, 이 때문인지 예페스의 기량은 피아노와 견줄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그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1952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금지된 장난"의 테마 음악(Romance)을 맡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클래식 기타 음악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랑의 로망스"의 연주는 그에게 커다란 명성을 안겨 준다. 예페스는 6현기타 대신에 자신이 개량한 10현기타를 사용한다. 이 악기는 낮은 E-Bb-Ab-Cb의 4줄을 첨가하여 만든 기타로 저음을 보강하고, 6현 기타가 가지는 정교함과 탄력성은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사각의 손톱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강하고 맑은 음의 탄현을 한다. 예페스는 악보에 충실한 연주로도 유명하며 레퍼토리나 레코딩 또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다양하다. 800여년 전의 타블라추어나 기타의 전신인 류트나 기턴 등의 희귀한 악보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해 주듯이 그의 연주는 우리나라에서 구하기가 쉬운 편으로 그의 HIT20이라는 음반은 클래식 기타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그의 연주는 정확함과 자연스러움을 갖추었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깔끔하고 선명한 음색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4. 줄리안 브림 Julian Bream, England, 1933.7.15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줄리안 브림은 1933년 7월 15일 런던 태생의 기타리스트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류트음악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그는 기타와 류트의 양면에 걸쳐 대가의 솜씨를 보여준다. 어려서 그는 아마추어 재즈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에게 배웠고 11세 때부터 러시아 기타리스트였던 알렉시스 체스나코프로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하여 12세에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연주무대에 참가할 정도로 기량이 향상되었다. 그 뒤 그는 기타리스트 협회장인 페롯에게 러시아식 겸 이탈리아식 기타연주법을 사사받게 된다. 1947년 세고비아는 런던 공연을 위해 영국에 와 있었고, 브림은 페롯의 소개로 세고비아를 만나게 되었는데, 세고비아는 그의 연주를 듣고 즉석에서 그에게 적극적인 후원을 할 것을 약속하였고, 브림에게 레슨을 해주게 된다. 브림의 정식데뷔는 세고비아를 만난 해인 1947년 영국 첼튼햄에서 이루어 졌으며, 그의 데뷔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14세 였던 브림은 1948년 영국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기타리스트로서의 피아노와 기타작곡을 공부했으나, 당시 기타는 천대받고 있는 악기였기에 그는 거의 독학으로 기타를 배울 수 밖에 없었다. 1950년에는 런던에서 데뷔했는데 이후 전 영국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클래식기타의 연주는 대중적이지 않아 브림의 성공적 데뷔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1950년 데뷔 직후 브림은 르네상스 시대의 류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곧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된 그는 연주회 프로그램에 덜 알려진 옛 음악을 적지 않게 삽입시키곤 했다. 엘리자베드 시대 음악에 관한 테너 피터 피어스와의 공동연구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는데 버클리, 므리튼, 헨체, 티페트 등 주요 작곡가들이 그 영향을 받아 류트와 성악을 위한 작품을 썼다. 브림은 1954년 스위스에서의 연주회를 시발로 유럽전역의 연주여행을 시작했다. 1956년 브림은 빌라로보스를 만나는데 이를 계기로 빌라로보스 기타협주곡을 영국에서 처음 연주하기도 했다. 1958년 이후 브림의 시야는 미국 뿐만 아니라 극동 지역까지 크게 넓혀졌다. 줄리안 브림 콘소트(Julian Bream Consort)가 결성된 것은 1959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Moriey의 콘소트 레슨교본 1권을 연주하기 위해서 였는데 이 그룹의 성공은 르네상스 시대 콘소트 음악의 대중적 인기를 끌어모으는 부수적 효과까지 거두었다. 이를 지켜본 몇몇 작곡가들은 기타음악의 효용성을 깨닫고 작품을 썼으며 베네트의 쳄버 앙상블을 위한 볍주곡, 브리튼의 녹턴, 윌튼의 다섯개의 바기텔 등이 그렇게서 만들어졌다. 브림은 기타의 모든 레퍼토리에 대해서 풍부한 지식과 이해를 갖고 있고 그의 화려한 스타일, 밀도 깊은 음색은 그의 연주를 듣는 일을 하나의 감동적인 경험으로 승화시킨다. 1964년 브림은 OBE(Officer of the British Empire:서훈의 일종)로 임명되고, 1968년 서레이 대학으로부터 박사학위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명성은 1976년 BBC TV에서 방송한 `A Life in the Country`의 방영으로 더욱 높아지게 되었고 1976년에는 빌라로보스 골드 메달을, 1982년 가을에는 그의 연주생애에 대한 책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스포츠카 광이었던 브림은 84년 여름 티스버그에서 자신의 스포츠카를 타고 오크가에 있던 그의 집으로 향하던 중 급 커브길에서 그만 핸들을 돌릴 틈도 없이 석조 건물을 들이 받고 목숨보다도 소중한 오른팔을 못쓰게 되었다. 수술 후 그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연주자로서의 절정기에 그는 생애에서 가장 큰 시련을 맛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기교의 많은 퇴보를 가져왔고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여 기타를 기피하기도 했지만 성공적인 재기로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주하기도 하고 음악적 해석은 더욱 탁월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5. John Williams, Austrailia, 1941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의 존 윌리암스는 4살때부터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 신동이었다. 아버지 밑에서 처음 10년간 공부한 그는, 1952년 런던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음악 세계에 있어 일대 전환이 된 계기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Accademia Musicale Chigiana di Sieria에 입학, 5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저 유명한 기타의 마법사 세고비아와 함께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어린 존윌리암스가 학생들 중 처음으로 독주회를 완벽히 개최, 전례없는 영예와 찬사를 한 껏 받게 된 것은 거장의 앞날을 말해주는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1958년,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데뷔1한 그는 완벽한 테크닉과 그만의 철학적 세계로 음악을 구도,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1962년 소련과 파리,, 마드리드에서의 잇단 연주회는 존 윌리암스를 세계적 거장으로 올려놓는 시금석이 되었다. 1963년에 일본과 미국에로의 진출이후 그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져 전세계 어느 곳에든지 그의 음악이 흘러 나오게 되었다. 러시안 롯렛의 처절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 영화 `디어 헌터`의 음악(까바티나)을 맡으면서 그의 제2의 음악세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줄리안브림, 파코 페냐, 이작 펄만, 배니 케설, 클레오 레인, 안드레 프레빈 등과 함께 연주 활동을 벌이며 그의 영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안드레 프레빈과 같은 작곡가는 존 윌리암스 연주에 깊은 매력을 느껴 그를 위해 기타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최근, 패트릭 고어, 레오 브라우어, 토루 타케미츠와 같은 많은 작곡가들은 존과 더불어 가슴 뭉클한 아름다운 곡을 많이 작곡하고 있다. 존 윌리암스는 음악의 최우선을 대중과 더불어 공감할 수 있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같은 열정이 결실을 맺어, 저 유명한 런던 로니스코트 재즈클럽에서 연주회를 가진 최초의 고전 음악가가 되었다. 이에 고무되어 그는 1979년 급기야 5인조 그륩 `SKY`를 결성, 확고부동한 명성을 쌓게 된다. 그들의 연주 실황은 레코드와 TV를 통해 유명세를 더하게 되고 특히,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그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현대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 새로운 그륩 `Attaccs`를 결성하였다. 존 윌리암스는 SONY CLASSICAL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20살때부터 정식 계약, 오늘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대부분이 레코딩되어 끊임없는 호평을 받고 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6. 클래식기타 최고의집안 로메로일가 Los Romeros, Spain, 1919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로메로 일가를 기타계에 있어서 가장 유명하고도 위대한 기타 가족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들 가족은 아버지 셀레도니오 로메로를 비롯하여, 장남인 셀린, 차남인 페페, 막내인 앙헬과 앙헬의 아들인 리토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정상급 연주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사중주, 트리오 듀엣, 솔로 등의 여러 형태로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그의 가족은 로스 로메로스(Los Romero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7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이민을 한 후 그들의 미국에서의 첫 공개 무대출연은 1961년이었고 그로부터 매년 100회에 가까운 연주회를 가져 왔다. 그들은 셀레도니오를 비롯하여 셀린, 페페, 앙헬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플라멩고만을 연주하였으나 현재에는 바하와 비발디로부터 집시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즉흥연주는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솜씨로 인정되고 있고, 그들의 앙상블은 완벽함을 보여 주는 동시에 개개인의 기량 역시 여느 연주자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로드리고가 1967년에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을 작곡, 헌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페인의 현대작곡가인 로드리고(Joaquin Rodrigo)는 그들을 위하여 「4개의 기타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여 주기도 하였다. 로메로 일가의 아버지인 셀레도니오 로메로는 작곡도 뛰어나서, 페페나 앙헬이 자주 연주하는 `말라게냐`, `탱고 안젤리타`, `안달루시아 조곡` 등은 그의 작품이다. 첫째인 셀린 로메로는 로스 로메로에서 가족을 서로 융화시키고 이끌어 가는데 능하고, 둘째인 페페와 셋째 앙헬은 연주력이 뛰어나다. 특히 페페 로메로는 이미 이시대 클래식 기타 대가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힐 정도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 페페 로메로는 아버지와 함께 세빌리아의 로페 데 베가(Lope de Vega)극장에서 데뷰하였다. 그 후 196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과 유럽 등을 연주여행하고 있고, 현재는 남 캘리포니아 대학 기타 주임교수로 있다. 페페와 앙헬의 듀엣 음반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또, 로드리고는 페페를 위하여 `축제 협주곡`을 작곡하여 페페 로메로가 초연하기도 했다. 페페의 연주는 상당히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그는 `플렌트 주법`이라는 주법을 사용하여, 강력하고 명쾌한 연주에 다이나믹하고 경쾌한 음색의 아포얀도를 구사한다. 앙헬 로메로는 바로크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 시대 음악에 대한 해석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7. David Russell, Scotland 1953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현존하는 기타리스트중 일급연주자로 손꼽히고 있는 기타리스트인 데이비드 럿셀은 1953년 스코틀랜드의 Glasgow에서 태어났다.음악가인 양친이 스페인령인 메노르카 섬으로 이주하여 그는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며 아버지에게서 직접 음악수업을 쌓았다.그의 아버지는 수준높은 아마추어 연주가로서,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의 팬이었는데 러셀은 이런 환경 덕택에 LP음반을 통해 어린시절부터 세고비아의 기타음색과 매우 친숙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열여섯살이 되던 해 그는 런던의 왕립음악원에서 유명한 기타 교수인 헥토르 퀸(Hector Quine)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그외에도 바이올린, 프렌치혼 등을 배웠다. 재학중 그는 줄리안 브림 기타상을 연이어 두번 수상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으며 졸업후에 랄프 바우한 윌리엄스 위원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75년에 스페인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은 산티에고 드 꼼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호세토마스에게 사사받는 행운을 안겨다 주었고 다음해에 그는Alicante기타 경연대회, 안드레 세고비아 경연대회에서 일등상과 1979년 스페인의 유명한 경연대회인 타레가상을 수상하였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이후 그는 같은 해에 런던의 위그모아홀과 뉴욕의 메르킨 콘서트 홀에서 데뷰를 가졌으며 런던에서의 럿셀의 연주를 들은 안드레 세고비아는 "당신의 음악적이고 기타리스트적인 테크닉에 나의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라고 격찬하였으며 우루과이 작곡가 Guido Santorsola는 그의 연주를 들은 후에 커다란 감명을 받고 럿셀을 위해 "브라질리아 소나타 No.5"를 작곡했고 Jorge Morel은 그에게 "소나티나"를 헌정했다. 그 외에도 그의 연주에 감명을 받은 많은 작곡가들이 그를 위한 기타곡을 앞다투어 헌정하고 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우리나라에서도 수차례 내한공연을 가져 호평받은 바 있는 그의 연주 특색은 단연코 아름다운 음색과 선율을 노래하는 풍부한 감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 있어서는 동료이자 라이벌인 마뉴엘 바루에코보다 한 수 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그의 명반으로는 19세기낭만파 기타곡집과 바흐, 헨델, 스카를랏티의 바로크 소나타 편곡집을 단연 추천할 수 있으나 클래식기타 전문 마이너 레이블인 벨기에의 GHA를 통해 발표되어 국내팬들에게 폭넓게 소개되지 못한 감이 있어 아쉬움이 크다. 또한 역작인 타레가 기타 명곡선집(2CD) 또한 스페인의 마이너 레이블인 OperaTres를 통해 발표되어 명성에 비해 그 연주를 들을 기회가 적은 점이 아쉬웠지만 작년에 한국에서도 발표되었다. 바루에코(EMI)나 페르난데즈(Decca)등의 다른  일급 연주가처럼 메이저 레이블에서 음반을 출시했다면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았을 것으로 추측된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그러나 이후 Telarc으로 레이블을 옮겨 바리오스 명곡집, 토로바 명곡집 등을 의욕적으로 녹음하고 있어 그의 연주를 이전보다는 많이 접하게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현재 레코딩과 리사이틀, 마스터클래스등 바쁜일정을 보내고 있으며, 그의 연주는 지금도 전세계의 많은 비평가들로 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8. Kazuhito Yamashita, Japan, 1961 --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961년 일본에서 출생한 야마시타는 8세부터 기타수업을 시작하여 1974년 일본 나가사키, 시코구 및 도쿄에서 그의 첫 리사이틀을 가졌다. 나르시소 예페스에게 사사했으며 1977년 일본 기타인 연합회가 주최한 콩쿠르에서 1등을 했고, 곧이어 이태리와 프랑스에서 가진 국제 기타 콩쿠르에서 연거푸 1등상을 수상했다. 1979년 야마시타는 도쿄 필하모니와 콘서트 및 음반녹음으로 데뷰했으며, 일본 주요도시 순회공연에 뒤이어 파리에서의 데뷰 연주회를 가졌다. 다음해 네덜란드에서의 순회공연때 암스텔담 콘세르트 헤보우 관현악단과 협연하여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1982년 그는 다시 일련의 연주회를 갖기 위해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1984년 토론토 기타 페스티발에 우승함으로써 독일, 비엔나 및 런던을 포함한 유럽순회공연을 가질 기회를 얻었고 거기에서 음악평론계 및 언론계로부터 그의 음악적인 예술성 및 다양한 표현력에 대해 놀랄만한 찬사를 받았다. 현재 BMG레코드 전속 기타리스트로 기타로 표현하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곡들을 편곡, 탁월한 테크닉으로 연주해내 찬사를 받았으며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왕성한 레코딩, 연주활동을 보이고 있다.야마시타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빠른 왼손과 핑거링으로 교묘한 왼손 운지 그리고 오른손 새끼손가락까지 많이 사용해 기타를 더욱더 현란스러운 음채색으로 그려놓고 있다. 이러한 점은 어느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며 그 기교에 감탄할 뿐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9. Agustin Barrios Mangore, Paraguai, 1885.5.5 -- 1944.8.7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1885년 5월 5일 파라과이 산 후안 바우티스타 데 라스 미시온네스에서 태어나 1944년 8월 7일 엘살바도르에서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위대한 기타 연주가이자 작곡가이다. 1900년 국립전문학교에 입학하여 고등학교 교육을 받았으며 1910년경 남미, 중남미 각지로 연주여행을 계속하였던 그는 1916년 브라질에 가서 15년간을 지내기도 하였다. 우리가 흔히 알기로는 가장 위대한 클래식기타 연주가로 세고비아를 들지만, 세고비아 자신은 망고레를 회상하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세고비아가 남미를 여행할때 망고레의 기타연주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의 연주를 보고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망고레는 1922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예노스아이레스에서 처음으로 A. Segovia를 만났다. A.Segovia는 이때 Barrios에게 기타 음악해석에 따른 조언을 요구했는데 이때 Segovia는 Barrios의 기타주법(양손의 독특한 Touch)을 자신의 기술로 만들었다. 유명한 스페인의 기타 제작가 Santos Hernandes는 그의 회고록에서 "Segovia는 망고레의 연주와 그로부터의 조언을 받고서야 완전히 그 테크닉을 완성하였다." 라고 술회하고 있다. Mangore라고 하는 이름은 파라과이의 대삼림(大森林) 속에 살고 있는 대추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서 Nitsuga Mangore(註;Nitsuga를 거꾸로 읽으면 Agustin이 된다.)로 만들었다. Barrios는 기타 작곡가, 철학자, 신학자, 시인이었고 또 여러나라 말에 통달하였다. 그는 바하를 열심으로 연구하였지만 시종 민족성의 토대 위에 그의 음악을 승화시켰다. 그의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공적은 아메리카 대륙의 민족학교 에스쿠엘라 망고레아나(Esucela Mangoreana)를 창설하고 스페인 기타계의 움직임에 대하여 남미의 민족색이 넘쳐 흐르는 곡을 예술적으로 높여가는 운동을 볼 수 있었다는 공헌이 있다. Barrios의 기타음악에 대해 작품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Segovia 뿐만 아니라 H.Villa-Lobos(브라질의 위대한 작곡가, 기타리스트)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Barrios의 작품 "사랑의 고백(Congession)을 듣고 그 영향을 받아 Villa-Lobos는 전주곡 1번(e minor)을 썼고, "향수의 초로(Choro da Saudade)를 듣고 "Choro Tipico#1"을 작곡했다. 또 미구엘 쵸베는 Barrios에 대하여 "Barrios는 `Estudio de Concierto`에서 기타 역사상 100년 후에나 겨우 보편적으로 될 것을 단숨에 해결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 있어서 위대한 악성으로 존경받고 있는데 기타 연주의 초인적인 그것은 아마도 그의 깊은 교양과 숭고한 인간적 정신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망고레가 작곡한 곡들은 한마디로 너무나 아름답고 장엄해서 존 윌리엄즈의 연주 레코딩과 많은 현대 기타리스트들의 연주앨범 및 연주가 있었지만, A.segovia는 그때 이후 그에 대해 경원하는 마음에서인지 그의 작품은 일체 연주된 판이 없다. "La catedral(대성당)"과 "Ras Abejas" 는 그의 좋은 작품으로 색체나 음향의 전달성은 끊임없이 흐르는 무궁동기법의 빠른 텀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곡이 좋은 보기가 되겠지만 어떠한 곡이 대부분 음계(스케일)적이라 해서 아포얀도로만 연주해선 안된다. 결국 아포얀도의 남용은 속도에 제한과 음색의 다양성에 부족을 가져다 주며 기술상 오른손 놀림의 곤란을 감수해야만 된다. 이것들은 아포얀도로도 되겠지만, 슬러의 첫 머리만 아포얀도로 탄주했을 때와 음색의 다양성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그는 전세계적으로 세고비아보단 알려지디 않았지만 세고비아를 능가하는 위대한 클래식기타 연주가, 작곡가일지도 모른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10. 모레노 토로바 Federico Moreno Torroba(1891)</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부친은 유명한 오르간주자로 그의 지도하에 음악생활을 시작한 Torroba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마드리드 왕립 콘세르바토리오에서 수학했다.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팔랴, 튜리나 등 스페인의 많은 작곡가들이 프랑스에 유학하여 대성하였으나 토로바만은 젊은 시절 프랑스에 가지 않았다 한다. 그는 스페인에 머물러 작곡에 열중하였는데 처음 오케스타라곡을 많이 써 스페인 독특한 오페레타, 즉 [사루스에라]같은 작품은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뒷골목 처녀] [가라바의 여자와 몬테가르메로] 등이 그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타를 갖고 있었으나 1920년에 처음 세고비아의 연주를 듣고 세고비아를 위하여 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세고비아 자신도 토로바를 자기에게 협력해주며 레파토리를 넓혀준 최초의 작곡가였다고 말하고 있다. 토로바의 곡에는 Sonata, Concerto와 같은 형식악도 있으나 그와 같은 어려운 곡보다는 스페인 무곡과 민요를 주제로한 것중에 보다 좋은 작품이 있다. 그는 맹인 작곡가 로드리고와 함께 만든 2막 오페레타 [푸른 악마(Elduend Azul)]도 남기고 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11. 괴란죌셔 (Goran Sollscher)</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괴란 죌셔는 1955년 스웨덴 출신의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1978년 열린 20회 파리 국제 기타 콩쿠르에서 직접 고안한 11현 기타를 가지고 자유곡으로 바흐의 `Prelude-Fuga-Allegro, BWV 998"를 연주하여 20회 파리 콩쿠르를 석권하였는데, 그가 연주한 이 곡은 청중을 완전히 압도하는 연주로 기교와 음악성 모두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여 많은 기타 팬들은 그의 바흐연주에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그의 연주는 대개 그가 고안한 11현 기타로 연주되다. 이것은 그가 파리콩크르에서 우승한이래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11현 기타는 스웨덴의 기타 제작자인 게오르그 볼링이 제작한 것으로 기본 조현법에 있어서부터 다른 다현 기타와 틀리다고 하는데 그것은 보통 기타 보다 3도 높게 조현되며 7번-11번현은 반음계로 진행되어 조율된다고 한다. 그리고 연주는 7번 현까지는 실제적으로 줄을 눌러 연주하는 반면 그 위의 줄들의 개방현만으로 연주되는 것이 특징적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그의 11현 기타는 왼손의 부담을 줄이고 양질의 저음을 얻을 수 있는 이점외에도 르네상스 류트나 바로크 류트를 위한 작품도 별다른 수정없이 연주를 할 수 잇다고 한다. 그러나그의 연주가 11현 기타에만 한정되는 것만이 아니고 6현 기타를 사용하여서도마찬가지로 뛰어난 연주를 보여 준다. 현재 괴란 죌셔는 독일 등 지에서 아주 뛰어난 연주가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음악은 고전적인 곡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근래에 `기타로 연주한 비틀즈`라는 음반을 내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는데 최근의 마누엘 바루에코와 함께 비틀즈를 클래식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음악의 지평선을 확장시키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12. 호아퀸 로드리고 JOAQUIN RODRIGO (1902)</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기타아를 위한 <아란훼스 협주곡>를 내놓아 세계에 이름을 떨친 화퀸 로드리고는 1902년 바렌시아 근처인 사훈토에서 태어난 스페인 음악가이다. 3살 적 장님이 된 그는, 어려서부터 바렌시아 음악원의 후란시스코 안티오크에게 작곡법을 배웠다. 1920년부터 1923년까지 유럽여러나라를 여행한 직후 작곡한 그의 첫 데뷰곡인 교향적 스케치<홍굴라레스>는 1924년 바렌시아 교향악단이 초연해 호평을 받았다.1927년 파리로 간 로드리고는, 뒤카에게 작곡법을 배우고, 화야와 친해졌으며, 음악의 필수 동반자인 터키 피아니스트 캄히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후 모리스 엠마뉴엘과 앙드레 삐로에게 음악학을 계속 공부한 뒤, 1939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아란훼스 협주곡>을 작곡, 사인스 델 라 마사에게 헌정.초연해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로드리고는 기타아를 연주할 줄은 몰랐지만, 이 악기의 독특한 작곡기법으로 <즐거운 소나타>와<스페인 소나타>등을 작곡했고, 매우 포플러한 <토니딜라와 환딩고> 2중주곡과 노래와 함께 연주하는 <휠리아스>.<카나리아스>.<3¡Æⓒøac>등이 유명하다. 더우기 로드리고의 기타아 협주곡들은 현대 세계에서 최고 정상급으로 꼽히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음량이 적은 기타아일지라도 특성을 잃지 않고 오케스트라아와 멋진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의 작곡기법은 스페인 특유의 리듬과 민요와 카덴짜를 바탕으로 하지만, 프랑스 인상주의에 기우는 형틀과 신고전적인 화성과 가락, 그리고 현대 불협화음을 사용함으로써 18세기 이래 스페인 국민음악과 선배들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국제성을 띄워 풍융한 음악으로 빛을 발하며 치달았다. 1954년에 작곡된<어느 귀 신사를 위한 환타시아>는 세고비아에게 헌정.연주된 곡이지만, 17세기 선배대가 가스파르 산스를 위해 쓴 작품으로도 보고 있다. 한편 성음에서 내놓은<축제 협주곡>도 유명하며, 기타아와 바이올린을 위한<여름 협주곡> 그리고 첼로를 위한<경쾌한 풍의 협주곡>도 잘 알려진 곡들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description>
			<link>https://songsarthall.com/?r=home&amp;m=bbs&amp;bid=museum_03&amp;uid=2334</link>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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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1 Mar 2006 15:36:20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기타리스트 바루에코와의 인터뷰</title>
			<description><![CDATA[ <A name="[문서의 처음]"></A>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마누엘 바루에코의 연주회를 마치고</SPAN> </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한전아츠풀 개관 기념연주회로서 2001년 5월 29일 8시 한국무지카, 하나기획의 주관으로 열린 그의 이번 연주회에서도 예외 없이 기계적인 완벽한 테크닉과 그 만의 특유한 음악적 해석으로 청중을 열광시켰다. 그의 연주회를 마치고 본 협회 임원진과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몇 가지 궁굼한 점에 대해 질문 해보았다. (그는 그의 부인과 함께 자리하였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질문 1. 음악적 해석이 악보대로 너무 정확하여, 더러는 차갑다고들 하는데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바루에코 답변 : 다른 악기와 다르지 않게, 정상적으로 연주하여, 평범한 연주가가 되고 싶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질문 2.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는 당신만의 비법이 있다면?</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답변 : 왼손과 오른손의 연습을 각기 따로이 하는 등 스케일, 알페지오 등을 여러차레 반복연습을 많이 하는 것 만이 유일한 방법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질문 3. 한국 청중과 음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답변 : 다른 나라에 비해 청중들이 많으며, 호응도도 좋다. 불고기, 김치 등 음식이 맛있어 좋아한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질문 4. 한전아츠풀센타 연주홀은 신축홀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답변 : 매우 흡족하다. 크고 웅장하면서도 공명도 좋고, 매우 아름다운 홀이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월리암 카넨가이셔 연주회를 마치고</SPAN> </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한전아츠풀 개관 기념연주회로서 2001년 5월 17일 8시 한국무지카, 하나기획 주최로 열린 그는 파리, 토론토, 길드국제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한 그의 독주회는 미국에서는 잘 알려진 연주자이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 관계로 작은 청중이 모여 아쉬웠으며, 음량도 비교적 작았었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매우 전통적인 느낌이 강하며, 테크닉 보다는 음악성을 추구하는 기타리스트라는 인상을 주었다. 바하의 샤콘느는 그가 다른 조로 편곡 연주하여 보다 이색적이었으며, 도입부의 부점을 보다 길고 짧게 바로크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기타 선에 철심을 끼워서 연주하므로 아프리카 금속타악기의 소리를 그대로 표현한 두산과 어네스트 작품에서 기타의 앞판을 두드리는 등의 타악기적인 효과로서 아프리카 토속적인 리듬을 멋지게 구사하였다. 앵콜 2곡 중에서도 미국 작곡가의 째즈적인 작품이 인상적이었다.</SPAN> </P>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연주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와 정겨운 대담을 나누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매운김치, 불고기 등을 자주 먹을 정도로 한국음식 애호가이며, 한국 언어와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며, 어려운 한국말 연습 중 한 가지를 가르켜 달라고 하여, “된장공장 공장장은 된 공장장이고 ..... ”를 가르쳐주니 그 자리에서 따라하는 등 인간미가 흘러넘치는 훌륭한 기타리스트였다.            </SPAN></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                    </SPAN> </P>
<P style="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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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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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1 Mar 2006 15:33:40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춘천 고악기전시회  5</title>
			<description><![CDATA[<p>춘천 고음악페스티발 중 고악기전시회...</p>
<p>관람객들  &amp;  춘천부시장 외</p><p><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a7350cb03f2646b457fd8c5b810dc5dc082522.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0a5f7d2485da63ca4640f837d1fefe55082522.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6d42487ac4d78d0f7f7532baf9898ba5082611.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f82c47540685e0f0c411a68807bb1e64082611.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93de64e79ce9f6f31347a854b7bc57d5082611.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31b2989b7350d65b609ff988ca93a599082611.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b733f14a663d61258cc237d70572cce3082611.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0cb964798efd1d22c4819480f5a9da02082611.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p>]]></description>
			<link>https://songsarthall.com/?r=home&amp;m=bbs&amp;bid=museum_03&amp;uid=2332</link>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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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01 Aug 2005 11:57:19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춘천 고악기전</title>
			<description><![CDATA[<p>춘천 고악기전시회 중</p><p><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8b54510218630ea96910035c954c2c3d082652.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695228da98d6f1edeb31a90fa09c3822082652.jpg" width="6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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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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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26 Jul 2005 02:19:43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악기사진</title>
			<description><![CDATA[수집한 악기의 일부사진(잡지)<br><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6483ba5b611216dbbb65c82e1f3972dc082821.jpg" width="74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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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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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9 Jul 2005 19:32:46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악기사진</title>
			<description><![CDATA[<br><img class="photo" alt=""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bb9d80cb49a739c233de485006707c83082744.jpg" width="740"><br>수집한 고악기 중 거북등기타, 시타르(인도), 챠랑고(페루), 부스킨(터키) 일부<br>]]></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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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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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9 Jul 2005 19:22:44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만남이라!</title>
			<description><![CDATA[자작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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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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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25 May 2005 12:58:22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기타 약사</title>
			<description><![CDATA[이전 사이트의 기타 약사문서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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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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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3 Feb 2005 00:47:46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악기박물관 조감도</title>
			<description><![CDATA[<p>30여년간 전 세계에서 수집한 여러 종류의 희귀악기들로... 기타와 피아노 음표모양 기타모양의 연못 등으로 설계된 악기 박물관 및 소극장 및 야외음악당을 계획하고 있습니다</p><p>&nbsp;</p><p><img class="photo hand" alt="" align="top" src="http://guitarac.com/files/2014/03/18/3af7c832a88dcee79b83c36e79eed46e082847.jpg" width="690" onclick="imgOrignWin(this.src);"><br><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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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카셀</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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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3 Feb 2005 00:42:58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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